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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공짜 점심 없듯 공짜 재정 없다

중앙일보 2020.09.09 00:45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온 나라에 빚 중독이 퍼지고 있다. 배경은 두 가지. 첫째는 돈값이 너무 싸다는 점이고, 둘째는 갈수록 깊어지는 포퓰리즘 바람이다. 둘 중 근본적인 배경은 초저금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한 초저금리는 2009년 스웨덴을 필두로 유럽 주요국과 일본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이어졌다. 하지만 효과는 없고 집값 폭등과 재정 악화 같은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저금리 후유증과 빚 중독 심각해
‘빚투’‘영끌’로 민간 부채 눈덩이
천문학적 예산도 결국 국민 부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초저금리로 돈이 만만해 보이자 민간이나 정부나 ‘일단 쓰고 보자’며 빚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재정을 크게 늘려 온 현 정부는 코로나 대응을 계기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위기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 없이 ▶낭비 없이 돈을 써야 한다. 현실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간다. 거의 해마다 선거가 치러지면서 거침없이 선심성 예산을 뿌린다. 전 국민에게 13조원을 뿌렸던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어땠나. 소비는 반짝 효과에 그쳤고 남은 건 빚뿐이다. 빚 중독의 결정타가 되면서 ‘사람은 공짜를 좋아한다’는 세상의 진리만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람들은 그 돈을 쓰면서 “이래도 되나”라고 수군거렸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공짜’라서 덥석 받았지만 세상에 공짜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의 이런 근심을 아랑곳하지 않고 더 강한 빚 중독의 모르핀을 쓰고 있다. 내년부터는 내놓고 외상을 그어댄다. 예산 555조8000억원 가운데 90조원을 빚으로 끌어다 쓴다.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6.7%로 치솟고, 2045년에는 100%로 치솟을 전망이다. “양극화를 해소한다” “코로나에 대처한다”면서 재정을 퍼부은 결과다.
 
내년 예산은 정말 천문학적인 큰돈이다. 12조2087억원으로 평가되는 경부고속도로 45개를 짓고도 남는다. 그런데 내년 예산 중 200조원은 집행되면서 바로 눈 녹듯 사라지는 복지 지출이다. 시간만 보내면 되는 일거리가 수두룩한 공공일자리가 100만 개를 넘어서고 국민 2300만 명에게 소비쿠폰이 지급된다. 못 받으면 바보가 될 정도다.
 
이렇게 해서 경제가 살아나면 좋겠지만, 오히려 혹독한 계절이 오고 있다. 민간과 정부가 모두 빚더미에 오르면서다. 가계의 빚 중독은 심각하다. 초저금리와 정부의 수요억제책으로 집값이 치솟자 민간이 ‘빚투’와 ‘영끌’로 주식 투자와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부채가 급증했다. 민간 부채는 올해 GDP 대비 200%를 처음 넘어섰고 국가채무도 내년에 1000조원에 육박한다.
 
기업이 돈을 잘 벌면 걱정 안 해도 된다. 청년 고용과 가계 소득이 늘고 소비가 살아나면 세수도 증가해 나라 곳간은 금세 채워진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안 된다. 정부의 최저임금, 근로시간, 경영권 통제 같은 반(反)시장 정책이 꼬리를 물면서다. 이자 보상 배율이라는 지표가 그 엄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낼 수 있으면 이자 보상 배율이 1인데 이조차 안 되는 기업 비중이 2017년 29.7%에서 올해는 50.5%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업의 돈 버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세수가 부족한데도 정부는 초팽창 빚투성이 예산을 짰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괜찮지 않냐고? 반도체 착시 요인을 봐야 한다. 반도체를 뺀 제조업 생산지수는 2015년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지난 2분기엔 90.6으로 뒷걸음질쳤다. 반도체만 아니면 한국의 제조업은 5년 전보다 생산 능력이 후퇴됐다는 의미다. 선진국보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으니 문제가 없다고? 우리는 돈을 마구 찍어 뿌려도 되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여기서 국가채무비율이 더 높아지면 국가 신용등급이 흔들려 환율이 불안해진다. 그 악몽은 외환위기 때로 충분하다. 공짜 점심 없듯 확장 재정에도 결코 공짜가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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