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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지역의사 확대보다 중증 응급환자 목숨 구하는 게 먼저”

중앙일보 2020.09.09 00:44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의사 파업이 가라앉고 있다. 20년 만의 대규모 파업이라서 충격이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의사 파업은 10년에 올까 말까 한 이슈다. 두 개가 겹치면서 혼란이 극심했다. 정부가 원점 재논의로 일단 물러섰지만 이걸로 끝난 것 같지 않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들고나온 명분은 지역의 의료 격차 해소이다. 지방의 뇌혈관질환 사망률이나 응급환자 사망률이 수도권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를 늘려서 낮추겠다는 것이다. 현장 의사는 어떻게 볼까. 응급의료가 미흡하고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의사 세 명에게 현실과 대안을 물어봤다.
 

의료 격차 현장 의사 목소리
지역에 가장 부족한 건 응급의료
공공의대 세운다고 해결 안 돼
공공역할하는 민간병원 살려야
일각선 “지역의사 외 대안 없어”

목포·강진·무안·진도·완도 등 전남 서부지역은 대표적인 응급의료 오지다. 의사를 늘리면 응급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지역 응급 의사 25명이 지난달 30일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지역에 부족한 의료서비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성명서에서 “의료 취약 지역에 부족한 것은 감기약·혈압약·당뇨병약을 처방하는 1차의료 의사가 아니다. 이런 건 적지 않은 개원의사, 공중보건의사들이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며 “부족한 것은 응급 상황에서 심장수술을 하고, 막힌 혈관을 뚫고, 절단된 신체 조직을 연결하는 고도의 수련 받은 의료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역의료 격차 해소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이다. 성명을 주도한 사람은 김재혁 목포한국병원 응급실 과장이다. 8일 통화했다.
 
김재혁 응급실 과장은 ’중증응급환자 시스템 투자가 공공의대보다 급하다“고 말한다.

김재혁 응급실 과장은 ’중증응급환자 시스템 투자가 공공의대보다 급하다“고 말한다.

왜 성명서를 냈나.
“의사 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게 중증 환자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병은 두 가지다. 만성병이 있고, 응급질환이 있다. 암 같은 게 만성병이다. 이 병은 서울 등 대도시로 가서 수술받아도 된다. 불편한 게 문제이지 대도시로 나가도 큰 문제 없다. 그런데 심근경색·중증외상·뇌혈관질환 등의 응급질환은 늦어도 3시간이라는 골든타임을 넘기면 안 된다.”
 
의사가 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웬만한 섬에 공중보건의가 들어가 있다. 이들은 응급상황 대처에 여의치 않다. 게다가 만성질환 관리는 원격의료로도 가능하다. 대동맥 박리(심장에서 나오는 굵은 혈관이 찢어짐) 환자를 수술할 의사가 많지 않다. 손가락 절단되면 8시간 이내에 접합해야 회복 확률이 높다. 이런 응급 치료를 적절한 수준으로 제공하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
 
공공의대에서 응급의료 의사를 양성하면 되지 않나.
“공공의대 나온 의사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공중보건의를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소신있게 진료하는 의사와 강제로 진료하는 의사는 차이가 크다.”
 
대안이 뭔가.
“의사를 늘리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공의대나 지역의사 예산으로 응급의료 시스템 개선에 먼저 투자해달라. 불이 나지 않더라도 소방서가 있듯이 응급실이 있도록 해야 한다. 군 단위 시골에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데가 많다. 경각에 달린 목숨을 살리는 데에 먼저 투자해 달라.”
 
지난달 23일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앞에는 전공의들이 벗은 가운이 쌓여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앞에는 전공의들이 벗은 가운이 쌓여 있다. [뉴스1]

김장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부회장(울산의대 교수)도 “지역에 응급의료가 부족하다. 지역별로 어떤 의료서비스가 부족한지 따지고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사과 깎는데 도끼를 들고나온 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의료는 민간 위주로 성장해왔다. 공공병원이 40여 개(적십자병원 포함)밖에 없다. 의료계는 “공공병원에 투자를 덜 하다 보니 의사들의 선호도가 떨어진다. 번듯하게 키워서 그 병원에 갈 경우 인센티브를 더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자원이 부족해 민간자본을 의료에 활용했다”며 “국가가 투자하지 않고 건강보험 제도로 좌지우지하니까 의사들과 갈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군 지역의 준종합병원장 A씨(익명 요구)는 “우리가 응급실·중환자실을 운영하면서 공공적인 역할을 하는데, 개인병원이라고 분류해 정부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이 병원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그는 고령화된 지역 주민의 감기 진료부터 근골격계 질환까지 담당한다. 의사가 10명(일부는 공보의) 있는데, 모두 타지에서 왔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산다고 한다. 평균 인건비가 대도시의 2.5배다. 이 원장은 “인구가 반토막 나면서 환자가 줄어 매년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언제 병원을 접을지 고민을 거듭한다”고 말했다.
 
적자를 어떻게 해결하나.
“나와 다른 가족 의사가 월급을 적게 챙기는 식으로 메운다.”
 
정부가 의사를 늘리면 좋지 않나.
“그런 식으로 10년 의무적으로 근무해봤자 옳게 진료할 리가 없다. 차라리 군의관을 줄이고 공중보건의를 늘려서 지원해주는 게 낫다. 기존의 지역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의료기관이 문을 닫지 않게 하는 게 급하다.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한 뒤 안 되면 새로운 대책을 써야 한다.”
 
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지역 병원장도 있다. 22년 지역의 병원을 운영한 B원장은 “심장혈관 시술할 의사가 3명 있어야 돌아가는데, 2년 전 1명이 나간 뒤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구할 길이 없다”며 “뇌혈관 시술 장비를 들여놓은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의사를 못 구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갈 만한 의료기관이 있으면 왜 의사가 안 가겠느냐고 의사협회가 주장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월급을 왕창 올려도 의사를 못 구한다. 공공의대든 지역의사든 의무적으로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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