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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전교조

중앙일보 2020.09.09 00:40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기자는 ‘전교조 세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됐던 1989년 모교 재단은 ‘불법 노조’ 가입을 문제 삼아 선생님 몇 분을 재단 산하 다른 학교로 쫓아냈다. 그중 한 분은 옛 담임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정문 앞에 주저앉아 시위를 했다. TV에서나 보던 민주화 운동을 흉내 내면서 구호도 외쳤다. 다만 어린 깜냥에도 ‘준법’의 범위를 넘어서면 선생님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를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까까머리 고교생들에게 집회 신고 등의 개념이 있을 리 만무했던 만큼 그 자체로 불법 시위였을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집단행동도 선생님들의 유배를 막진 못했다.
 
기자의 모교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아예 직을 잃고 교단에 설 수 없게 된 분들도 수두룩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부 시절 참교육을 외치면서 희생을 감내하던 교사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정체되고 다소 냄새나는 물이었던 당시 교육계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을 무기로 개혁을 외치던 전교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10년 투쟁 끝에 전교조가 1999년 합법 노조 지위를 따냈을 때 기자는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교조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게 분화했다. 도덕적 우위는 상실한 지 오래고, 과잉 정치 편향 탓에 사실상 정치조직으로 변질했으며, 과도한 이념 교육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거부감을 유발했다는 것이 비판하는 측의 주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합법’의 울타리를 다시 잃었을 때 동정과 분노의 목소리만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7년간 거의 잊혔던 전교조가 대법원의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판결을 등에 업고 돌아왔다. 학부모로 전교조를 다시 대면하게 된 감정은 복잡 미묘하다. 학생보다 정치를 우선시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기치로 내걸었던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 일부는 현실화하고 일부는 철 지난 유행가가 된 이때, 돌아온 전교조는 무엇을 존재 이유로 삼아야 할까. 31년 전 전교조는 창립 선언문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다”라고 명시했다. 많은 경우 그렇듯 답은 초심에 있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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