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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낙연의 결단

중앙일보 2020.09.09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대전환은 우리의 결단을 요구한다.”
 
지난 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야당이 쏟아낸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병역 관련 의혹 폭로에 파묻혔다. 하지만 ‘대전환’ ‘결단’이라는 단어는 뇌리에 남았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향한 혁신을 위해선 여·야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맥락에 놓인 두 단어는 왠지 공허했다. 민주당의 ‘대전환’과 이낙연의 ‘결단’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외연에서 빠져서다.
 
노트북을 열며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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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지만 민주당에 요구되는 대전환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보여준 건 며칠 새 추미애 사수 총력전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의 말의 향연이었다. “군에 안 갈 수 있는 사람인데도 군에 갔다는 사실이 상찬되지 못할망정 문제 삼는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설훈 의원) “야당이 실제 청탁 여부와 무관하게 대화 내용을 확대해석, 침소봉대해 마치 스모킹건이 있는 것처럼 꾸며내고 있다”(김종민 최고위원) “자신이 정당하게 쓸 수 있는 연가를 써서 요양하고 온 병사에게 없는 의혹을 덮어씌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김남국 의원) 등등. 지난해 9월 조국 사태 당시 맘껏 뽐냈던 집단적 공감능력 부재 증상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남녀 법무부 장관, 입시와 병역, 아빠 찬스와 엄마 찬스 등 다양한 개념쌍들이 주는 효과에 조국 수호에 나섰던 인물들이 다시 총대를 메는 장면이 맞물리면서 기시감은 절정에 다다랐다. 추 장관이 야당 의원을 “보좌관이 뭐하러 그런 사적인 일에 지시를 받고 하겠느냐”고 호통치거나 “소설 쓰시네”라고 비아냥대지 않고 차분히 자료를 준비해 소명했다면 어땠을까. 추 장관과 사수대의 움직임은 의혹을 자동차 지분 쪼개기, 딸 유학 비자 청탁 등으로 확산시키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
 
이제 정치권 안팎의 시선은 176석 거여의 수장인 이 대표를 향하고 있다. 야당이 국정조사 등을 국회 일정 협의에 올리는 순간 침묵 속에서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을 이 대표도 뭔가 결단해야 할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후 전개에 대한 당내 전망도 “조국 사태랑 똑같이 돌아가는 중. 그 결말도 아마 똑같은 겁니다”라는 진중권의 말과 다르지 않다. 친문의 등에 업혀 당권을 잡은 이 대표가 이미 친문 인증이 끝난 추 장관의 거취에 영향을 주지 못할 거라는 게 중론이다.
 
반전 있는 결단을 기대하는 건 망상(妄想)일까. 이미 조국 사태로 20대를 잃었고 부동산 파동으로 30~40대 중도층을 떠나보내고 있는 민주당이 ‘문빠’의 늪에서 헤어나올 대전환의 실마리를 잡을 수는 없을까.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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