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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고 고용보험' 밀어붙인 정부···정작 63% "의무가입 반대"

중앙일보 2020.09.08 17:12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4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45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온 ‘특수형태 고용근로자(특고) 고용보험법’이 사실상 정부 안대로 9월 국회에 제출된다. 핵심 쟁점인 적용 직종과 보험료율 등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경제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논란이 지속할 전망이다.
 

특고 ‘의무가입’ 국회 통과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특고 종사자를 고용보험에 편입시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징수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재계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지난 7월 입법 예고한 법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골자는 ▶특고 고용보험 의무가입(당연가입) ▶보험료 특고와 사업주가 나눠 부담 ▶소득감소로 인한 이직 시 실업급여 지급 등으로, 코로나19 경제위기로 인한 고용불안 해소 등이다. 
 
정부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보험설계사·건설기계조종사·학습지교사·골프장캐디·택배기사·퀵서비스기사·신용카드모집인·대리운전기사 등 14개 직종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보험료는 사업주와 특고 종사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방식을 시사했다. 권기섭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노사가 공동부담하는 원칙만 결정돼 있다”면서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노사가 비슷하게 부담하는 통례가 있다”라고 말했다.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경제계 입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경제계 입장.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경제계는 특고 종사자와 일반 근로자는 근로계약과 업무 형태 등이 전혀 다르다며 강한 유감을 드러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특고 종사자는 업무 수행이나 이직·전직까지도 자기 결정권이 강한 독립 사업자의 지위”라며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는 스페인·이탈리아도 특고 간의 선택적 가입, 종사자 보험료 전액 부담하고 있어 이 방식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주장했다.  
 
특고 종사자는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지대에 있는 노동자로, 그 규모가 약 25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회사에 직접 고용돼 있지 않고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다. 법적으로는 고용보험 의무가입 등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개인 사업자’라 경제적 지위가 불안하지만, 특정 회사의 ‘직원’이 아니어서 소득관리나 업무방식이 일반 근로자보다 자유롭다.  
자료 : 한경연

자료 : 한경연

정부 ‘고용안정’ vs 특고 ‘오히려 일자리 줄 것’ 

특히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정작 당사자인 특고 종사자가 의무적인 보험가입을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경연은 택배기사·보험설계사·가전제품설치기사·골프장캐디 등 대표적 특고 종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2.8%가 ‘일괄적인 고용보험 가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불안’이었다. 특고 종사자 10명 중 7명(68.4%)은 고용보험 의무적용 시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했다. ‘사업주 부담이 증가(41.3%)’하고 ‘고용보험 비용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돼 사업환경이 악화(23.5%)’하고 ‘무인화·자동화를 촉진(19%)’ 시켜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직종별로는 골프장 캐디의 74.1%, 택배기사의 70%, 보험설계사의 66.7%, 가전제품 설치기사의 63.6%가 고용감소를 예상했다. 
 
이 조사는 지난달 10~17일 4개 직종 종사자 23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 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사업주의 부담 증가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고의 어려움을 오히려 가중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 : 한경연

자료 : 한경연

경제계는 이번 개정안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원하는 사람만 보험에 들게 하고, 특고 종사자의 보험료율은 일반 근로자보다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한 택배회사의 대리점과 배송계약을 맺고 일하는 택배기사 정모(42)씨는 “기본적으로 더 많이 배달할수록 가져가는 수익도 많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물량을 조정한다”며 “고용보험의 장점이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가입비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고용보험료 산정을 위한 소득신고에도 거부감을 나타냈다. 설문에서 ‘소득신고가 다른 사회보험 적용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답이 절반에 가까운 46.6%였다. ‘소득 노출 자체가 꺼려진다’는 반응도 17.5%나 됐다. 추광호 실장은 “코로나19로 경영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 안은 사업주와 특고 모두에게 부담만 지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근로자와 계정통합 논란 

고용보험 기금 재정도 문제다. 지난해 실업계정은 1조3731억2880만원 적자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실업급여 신청이 급증하면서 적자 폭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입법안은 특고 종사자가 이직 전 24개월 중 1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도록 했다. 자발적인 이직은 수급 제한 사유지만 경제계는 “계약 건수나 배송량, 라운딩 횟수 등으로 소득조절이 가능한 특고의 특성상 실업급여를 목적으로 소득을 줄이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실업급여 계정을 일반 근로자와 통합시킨 것에 대해 “고용보험 재정수지 악화로 기존 피보험자(임금 근로자)에게 보험료가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임금 근로자와 실업급여 계정 분리 ▶임의가입(선택가입) 방식 적용 ▶특고의 보험료 부담비율 상향조정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공동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고 고용보험은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강조하면서 입법에 가속도가 붙었다. 고용부는 향후 전 국민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해 연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소아·하남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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