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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던 트럼프, 돌연 "러브레터 아니다"

중앙일보 2020.09.08 16:12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위원장이 발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쳐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김위원장이 발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쳐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러브레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 편지를 진짜 러브레터로 생각하는 줄 알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멍청하다고 비난했다. 공개 석상에서 직접 여러 차례 “사랑에 빠졌다", "아름다운 편지”라고 언급했지만, 돌연 이를 부인한 것이다.

트럼프, 트윗으로 존 볼턴 비판하면서
"진짜 레브레터로 여긴 줄 안 얼간이"
"나는 그저 빈정거린거였는데…"
친서 25통 담은 우드워드 신간 의식?
비판 회피 위해 '빈정거렸다'고 핑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서 “또라이 존 볼턴은 내가 ‘김정은으로부터 온 러브레터’를 진짜 그렇게 대하고 상의한 것처럼 얘기한다고 방금 들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분명히 나는 그저 빈정거린(sarcastic) 것이었다”면서 “볼턴은 완전한 얼간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윗에서 볼턴이 언제, 어떤 식으로 러브레터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를 언급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또 뒤늦게 김 위원장 친서를 러브레터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이유나 계기도 설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까지는 대중 유세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김 위원장 친서를 러브레터에 비유했다. 지난해 6월 11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으로부터 매우 아름답고 따뜻한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9월 29일 웨스트버지니아주 윌링에서 열린 유세에선 김 위원장을 언급하며 “나는 정말 세게 나갔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그렇게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이건, 진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게 아름다운 편지를 썼고, 그것은 훌륭한 편지였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강조했다.
 
당시 유세장 안에서 취재하는 언론을 가리키며 “저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더라.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말할 것이다. 얼마나 대통령답지 않냐(고 비판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랑에 빠졌다”는 발언이 논란을 빚자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후에도 김 위원장의 친서를 극찬하고 친밀함을 줄곧 과시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태도가 돌변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트윗은 볼턴을 비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ㆍ안보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을 펴낸 지 3개월이 지난 데다 천적처럼 맞서던 두 사람도 가장 최근에는 ‘스파링’을 주고받지 않았다.
 
오히려 볼턴은 이날 폭스뉴스 시사프로그램 ‘더 스토리’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미군 전사자를 “패배자”나 “호구”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옹호했다. 지난 3일 미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이 트럼프 대통령이 전사자를 모욕하면서 날씨를 핑계로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묘지를 참배하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 셈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한 뒤 손등을 치며 친근함을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한 뒤 손등을 치며 친근함을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선을 50여일 앞두고 김 위원장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협상을 외교 성과 목록에서 빼는 분위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김 위원장과 북핵 협상에 대한 자화자찬을 쏙 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난 3년 반 임기 동안 외교 성과를 나열하면서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IS)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와 이란 군부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 제거,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 간 평화협정 체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방위비 증액 등을 거론했다.
 
대선 정국에서 북한의 도발 억제를 성과로 포장하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이 중단되고, 미국인 인질과 미군 유해가 돌아오는 등 긴장과 갈등을 낮춰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주장해왔다. 
 
오는 15일 발간 예정인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격노(Rage)』와 관련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 25통을 입수했다고 밝힌 만큼 이 가운데 일부가 책을 통해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나 우려가 제기될 때 종종 ‘사캐즘(sarcasm·빈정거림이나 비꼼)’을 구실로 쓴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내놓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한 불신을 지지자에게 심어주기 위한 행동이란 것이다.
 
인디펜던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브리핑에서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거나 자외선이나 매우 강렬한 빛을 쪼이는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이 비판받자 “매우 빈정대면서 이슈를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ISIS를 창시했다고 거듭 주장해 비판받자 빈정거린 거였다고 말하곤 빠져나갔다. 나중에 지지자들에게는 다시 ”솔직히 말해 그렇게 빈정댄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고 인디펜턴트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실수했을 때도 빈정거림을 무기로 삼았다. 지난 4월 트윗에서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에 대한 수사로 ‘노블’ 상을 받은 기자들을 고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벨(Nobel)상을 노블(Nobleㆍ고결한) 상으로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언론이 이를 지적하자 트럼프는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철자를 잘못 썼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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