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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태풍에 ‘금값’된 채소…샤부샤부집도 배추김치 치웠다

중앙일보 2020.09.08 05:00
추석을 앞두고 채소·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뉴스1

추석을 앞두고 채소·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뉴스1

“도토리묵 무침 해 먹으려고 마트에 갔다가 오이 하나 사 들고 나왔네요. 상추 한봉(120g) 4380원, 애호박 1개 4280원, 오이 2개 4050원, 시금치 한단(250g) 6780원이 말이 되나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주부 김모(34)씨는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채소·과일값에 혀를 내둘렀다.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밀키트·샐러드를 주문하거나 외식을 하는 게 더 저렴할 정도라고 한다. 김씨는 “소고기 샤부샤부 밀키트 2인분 1만3900원짜리를 두 개 사서 3인분 저녁을 차렸는데, 가성비가 괜찮았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재료를 하나씩 사서 한 상을 차리려면 5만~7만원은 써야 한다”고 말했다.    
치솟는 채소값(배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배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추석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역대 최장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과일값이 평년과 비교해 이미 두배나 오른 데다 잇따른 태풍으로 농산물 출하량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적어도 추석까지는 농산물 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8일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추석을 앞두고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차례상 품목을 조사한 결과,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지난해보다 평균 20% 가량 올랐다. 전통시장에서 차례상을 준비하려면 지난해보다 3만8400원(16.5%) 오른 27만500원, 대형 마트에선 8만270원(24.7%) 오른 40만4730원이 필요하다. 
치솟는 채소값(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연구원은 “견과류 중 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입량이 줄고, 태풍으로 낙과율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며 “긴 장마와 폭염으로 채소류의 가격 변동성도 커 졌고, 닭고기, 소고기, 쌀도 지난해와 비교해 비싸다”고 설명했다. 
 

배춧값 한 달 만에 57% 급등 

치솟는 채소값(수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수박).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8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거래된 배추 1포기의 소매 가격은 9738원으로, 1년 전(4890원)과 비교해 99% 올랐다. 한 달 전만 해도 6165원이었는데, 가격이 58% 뛰었다. 무 한 개는 1년 만에 1913원에서 3703원으로 94% 상승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홍로 사과 10개는 같은 기간 2만4921원에서 3만321원으로 22% 올랐다. 수박·쪽파·깻잎·방울토마토·양배추 가격도 1년 새 30~80%가량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미 지난달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상승했다. 이는 2017년 1월(15.9%)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농수산물 가격 급등에 가뜩이나 어려운 외식업체는 비상이다. 코로나19로 매출 감소를 가까스로 버텨왔는데 이제 식자재값이 올라 마진이 더 줄어들 위기다. 궁여지책으로 채소 반찬을 줄이거나 저렴한 채소로 대체하고 있다.  
 

회·족발에 “당분간 상추 제공 중단” 

치솟는 채소값(대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대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는 굴 소스 채소볶음에서 청경채가 빠지고 양배추만 가득해 손님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장인 신모(36)씨는 “요새 코로나 때문에 외식업체가 어려운 건 잘 알고 있지만, 중식 채소볶음에서 청경채가 없는 건 너무하지 않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상암동의 한 샤부샤부 가게에서는 늘 내놓던 배추김치가 사라지고 무생채만 식탁에 올라왔다. 일부 족발집·횟집에서는 ‘당분간 상추를 제공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야식으로 곱창을 주문했더니 상추와 깻잎이 두 장씩 배달왔다는 경험담도 속출하고 있다.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조모(48)씨는 “지금 상추가 한 상자에 9만원이나 해 돼지고기보다 더 비싸다”며 “반찬과 샐러드를 퍼주다 보면 손님 받고도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소 도매가 하루 만에 30%씩 급등 

치솟는 채소값(당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당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앞으로 채소 가격이 더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잇따른 태풍 소식에 채소 도맷값은 이미 출렁이고 있다. 7일 얼갈이배추와 상추는 전 거래일(4일)과 비교해 도매가격이 각각 28.6% 24.3% 올랐다. 오이, 애호박, 꽈리고추 등도 하루 만에 도매가격이 25~35% 급등했다. 앞서 지난 4일에도 양배추, 시금치, 풋고추 등의 가격이 하루 만에 20~40% 급등했다. aT 관계자는 “태풍 등 기상이변이 있는 경우 농수산물 경매가 과열돼 가격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매가격 상승세는 1~2주의 시차를 두고 소매가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채소 가격을 매일 바꾸지는 않기 때문에 도매가가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추후 가격 상승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치솟는 채소값(사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치솟는 채소값(사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총 199.26㎢에 달한다. 벼·나무 등이 비와 바람에 쓰러지는 ‘도복 피해’가 142.67㎢로 가장 큰 가운데 낙과 피해도 33.55㎢에 달했다. 침수 피해도 14.06㎢ 수준이었다. 한반도 동쪽을 훑고 지나간 10호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농수산물 가격이 다시 한번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태풍이 동해안 쪽으로 상승 이동할 경우 강원도 태백시 쪽 무·배추 산지에 직접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제주 산지의 피해가 클 경우에는 11월까지 채소 소비자 가격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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