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명복 칼럼] 괴물이 된 소셜미디어

중앙일보 2020.09.08 00:39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미국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페이스북이 ‘미 선거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조치(New Steps to Protect the U.S. Elections)’를 내놓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일 발표한 조치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1월 3일 대선 직전 1주일 동안 신규 정치 광고 게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선거 막판에 특정 캠프가 거짓 정보를 이용한 정치 광고를 페이스북에 올릴 경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바로잡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대선 레이스 마지막 한 주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광고 특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너무나 힘이 세진 소셜미디어
21세기 리바이어던으로 등장
정치적 제도와 민주주의 위협
사용자 각성과 절제, 규제 필요

눈에 띄는 또 하나는 개표 완료 전 특정 후보가 승리를 선언하고, 여론몰이에 나서는 상황에 대비한 안전장치다. 선거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발표되는 각 후보 캠프의 일방적인 승리 주장에 대해 별도의 경고 표시를 붙이고, 이를 클릭하면 실제 개표 상황을 보여주는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표 상황에 대한 정보 제공은 미국이 아닌 영국의 로이터통신에 맡길 방침이다. 저커버그는 “분열된 사회상을 고려할 때 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데 며칠, 혹은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국가적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안전장치 마련 배경을 설명했다. 현장 투표 중심으로 개표가 진행될 대선 당일 밤에는 트럼프가 크게 앞서지만 뒤늦게 우편 투표함이 열리면서 결과가 뒤집힐 수 있다는 점에서 개표 상황의 대혼란은 이번 미 대선을 위협하는 최대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페이스북은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노린 악의적 가짜뉴스 확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트럼프 당선을 바라는 러시아의 교묘한 선거 개입에 악용됐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페이스북은 선거나 정치와 관련한 부정확한 정보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들어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지난 5월에는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럼프의 선동적 트위터 글에 경고 표시를 한 트위터와 달리 페이스북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광고 보이콧 운동을 촉발하기도 했다.
 
저커버그의 결정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페이스북이 나름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몇 가지 조치들로 막아 내기에는 소셜미디어로 인한 민주주의 제도의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왓츠업, 인스타그램 등 미국의 SNS는 트럼프 진영과 반(反)트럼프 진영이 편을 갈라 패싸움을 벌이는 난장판이 된 지 오래다. SNS가 아니었다면 트럼프가 집권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문재인의 집권도 SNS를 영리하게 활용한 촛불 시위대 덕분일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포퓰리즘과 국가주의 확산도 SNS 효과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친문(親文)과 반문(反文), 친조(親曺)와 반조(反曺)가 편싸움을 벌이는 한국의 ‘빠 정치 현상’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편리성을 체감하는 동안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사상과 취향의 가두리 양식장에 갇히고 만다. 반향실(反響室)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목소리만 듣다가 사유의 절름발이, 확증편향의 노예로 전락한다. 두 쪽으로 갈라진 반향실에서 나는 목소리 중 어느 쪽이 크냐에 따라 선거 결과도 결정된다. 집권 후에도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권력을 잡아도 통합의 정치에서 멀어지고, 민주주의는 쇠퇴하게 된다.
 
패거리 싸움터가 된 공론장을 순화하고 바로잡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를 걸러내고 오염되지 않은 팩트를 토대로 정론을 펼쳐야 할 언론은 한발 앞서 SNS에서 화제가 된 목소리를 쫓아가며 중계방송하기에 바쁘다. 기자들도 클릭과 ‘좋아요’ 수를 의식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됐다.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먹히는 화제성 글이 대접받다 보니 갈수록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편파적인 글이 판을 치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순기능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17세기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사회적 계약에 따라 권력을 이양받은 국가라는 합법적 괴물로 탄생했지만, 21세기에는 소셜미디어가 리바이어던이 됐다. 스마트폰에 SNS 앱을 깔고,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순간, SNS는 우리의 지배자가 된다. 시간과 돈을 바쳐가며 ‘좋아요’와 ‘싫어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와 전달 버튼을 클릭하면 할수록 공론장은 더욱더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우리 스스로 각성과 절제를 통해 소셜미디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미래는 암담하다. SNS의 폐해를 줄이고 부작용을 막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논의도 절실하다. 괴물이 된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한 공정거래 차원의 규제도 불가피해 보인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