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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코로나가 바꾼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과 전략

중앙일보 2020.09.08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예비역 중장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예비역 중장

“김정은 위원장이 위임 통치를 하고 있다. 통치 스트레스 때문이다. 김여정과 전문 부위원장들에 의해 위임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
 

신변 안전 위해 공개 활동 확 줄여
‘위임 통치론’은 희망적 해석일뿐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가정보원이 브리핑했다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지난 4월부터 건강 악화로 김여정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위임통치가 진행 중이라고 풀이했다.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올해 들어 급감한 이유도 건강 때문이며 과거 사진을 조작해 보도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노동신문에 언급된 ‘당 중앙’이 김여정을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무근이다. 김 위원장은 7월부터 회의체 형식의 활동을 대폭 강화했다. 기록영화도 보인다. 북한 문헌을 샅샅이 살펴봐도 ‘당 중앙’은 김 위원장이지 김여정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위임통치란 용어가 만들어낸 희망적 사고이자 또 하나의 설이다.
 
북한에서 위임이라는 용어는 선대부터 종종 사용했지만, 위임통치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 6월 김여정은 담화에서 “나는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언급했다. 최고 영도자가 당·국가 회의체의 결정 과정을 거쳐 사전에 조율된 권한과 책임을 위임했다는 의미다.
 
상황과 여건에 맞게 성과와 책임을 분할하는 통치행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동생 김영주와 후계자 김정일도 조직지도부장의 막강한 권력으로 국정 전반을 장악하고 실세 역할을 했었다.
 
김여정도 김정은 시대의 최고 실세다. 하지만 유일 영도체제 특성상 김여정이 2인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지속하는 대북 제재의 영향, 설상가상의 코로나19와 수해·태풍 등 예상치 못한 악재가 계속 생기고 있다. 그야말로 민심이 흉흉한 위기상황이다.
 
특히 코로나19에 취약한 체질인 김 위원장은 유일 영도체제의 최고 존엄으로서 공개 활동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야외 활동을 가급적 전문 고위 간부들에게 위임하고 정책 회의체를 최대한 활용하는 영리한 통치자로 변모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 딜’ 이후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잘 나서지 않으려는 간부들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타의 반, 자의 반 김여정과 부위원장들을 앞장서게 하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19 발(發) 북한식 책임 정치’가 진행되는 형국이다.
 
돌이켜보면 김 위원장은 이미 지난 4월 11일 긴급 소집한 정치국 회의에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국가 전략을 조정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김여정이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하고 위임에 의거, 대남·대미 악역으로 내부 결속을 도모했다. 마침내 8월 19일 당 전원회의에서 경제 실패를 자인하며 내년 1월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결정하는 국가전략 수정 계획을 발표했다.
 
북한 체제 역사상 유일 수령인 최고 존엄이 좋지 않은 일에 앞장서서 책임진 사례는 드물다. 단지 시대별 지속과 변화의 내용은 달라진다. 서구 물을 먹은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선대와 사뭇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예컨대 최근 수해 현장에 김정은이 차를 직접 몰고 나타났다. 박봉주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 총리 등의 수해 현장 방문 소식을 노동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김 위원장의 허락이나 지시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위임통치의 일환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북한을 제대로 직시하기가 어렵다. 코로나19가 한국에서는 배달 택배 문화를 촉진했고, 북한에서는 통치 스타일에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다음 달 10일 당 창건 75주년 이벤트로 내부 전열을 재정비하고, 미국과의 새로운 담판을 위한 전략적 카드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변수는 역시 코로나19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예비역 중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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