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리창에 글, 땀복 된 방호복…간호사가 그린 음압병실

중앙일보 2020.09.08 00:03 종합 14면 지면보기
오영준

오영준

“한장의 그림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이 있잖아요.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의 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천 가천대길병원 오영준씨
미대 출신 남자 간호사 이색 이력
중환자실 근무하다 코로나 자원
“현장의 우리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인천 가천대길병원에서 6일 만난 오영준(34·사진) 간호사의 말이다. 오 간호사는 길병원(본관 지하)에서 지난 1일부터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희망 그림전’을 열고 있다. 지난 봄 음압병동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돌본 오씨가 겪고 담은 그림 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화가를 꿈꿔온 오씨는 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군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화가로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없어 ‘꼭 미술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나’고 생각을 바꿨다. 간호사라는 새 길에 도전했다. 힘들 거라 예상했지만, 남자 간호사가 많지 않은 현실과 강한 업무 강도에 지쳐갔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며 바쁜 일상을 버텼다. 처음엔 간호사의 소소한 일상을 그리다가 점점 동료 의료진 모습까지 웹툰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림일기처럼. 2015년부터는 페이스북에 ‘간호사 이야기’ 페이지를 만들어 그림을 올리고 있다.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 환자의 혈관을 찾고(아래),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아래).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 환자의 혈관을 찾고(아래),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아래).

그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지난봄.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모습을 담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2월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가천대길병원으로도 환자들이 분산됐다. 내과중환자실에서 근무 중이던 오씨는 음압 격리병상행을 자원했다. 오씨는 “같이 사는 가족이 없어 감염시킬 위험이 적은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위 사진), 환자의 혈관을 찾고,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아래 사진).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위 사진), 환자의 혈관을 찾고,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아래 사진).

음압 격리병상은 다른 의료진과 분리돼 있다. 격리병상 밖 의료진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유리창에 글을 쓴다. 맞은 편 동료가 알아보기 쉽게 좌우 반전된 미러 이미지로 적어 전달하곤 했다. 입는 데만 10분 이상 걸리고, 통풍이 안 돼 2~3시간 정도 지나면 속옷까지 다 젖는 레벨 C 방호복을 입고 긴장 속에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힘든 나날이었다.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위 사진), 환자의 혈관을 찾고(가운데 사진),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

오영준 간호사가 그린 음압격리병상 풍경. 좌우반전된 글로 바깥 쪽과 소통하고(위 사진), 환자의 혈관을 찾고(가운데 사진), 휴식 중인 의료진의 모습.

오씨는 “음압 병상 내에선 장갑도 두 겹 이상 착용해 주사를 놓은 게 쉽지 않았다”며 “환자의 혈관을 찾으려 애쓰던 일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간호사 이야기’에는 의료진들의 댓글도 적지 않다. 미러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을 그린 게시물에 “우리는 영상통화나 화이트보드로 소통한다”, “내공이 쌓이면 왼손이 오른손만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더라” 등이다. 힘겨운 나날이지만 오씨는 이런 댓글들 덕에 힘을 얻는다고 한다. “팍팍한 중환자실이 힘들고 고단하지만 누가 공감해주거나 댓글을 보는 재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며 웃었다.
 
오씨는 자신의 그림으로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서 온 환자분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장치)까지 동원하고 투석까지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가 호전돼 두 달 만에 퇴원했다”며 “코로나19는 하루 사이에 중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가볍게 보지 말고 마스크를 꼭 쓰는 등 방역수칙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