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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합의제 기구’ 진보로 주류 교체…감사원장이 돌발변수

중앙일보 2020.09.08 00:02 종합 12면 지면보기
“4대 합의제 기구의 인적 구성 변화가 완성되면 사회 변혁 동력이 생길 것이다.”
 

이재명·전교조 손 들어준 대법원
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9명이 진보

‘감사위원 제청 갈등’ 원장 사퇴 압박
일각선 “삼권분립 이미 손상 신호”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가 언급한 4대 합의제 기구는 대법원·헌법재판소·감사원·방송통신위원회다.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구성원이 임명되고 합의제(合議制)가 작동하는 곳으로 사법부(대법원·헌재)와 독립성이 특히 강조되는 기관들이다. 이들 조직의 ‘인적 정비’가 끝나는 시점이 “대한민국 주류(主流) 교체의 시발점”이라던 청와대 관계자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있다.
 
국회 청문회를 통과한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가 8일 취임하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이 8명이 된다. 14명의 대법관 중 김 대법원장과 그가 제청한 대법관의 비율이 64.3%를 차지한다. 이중 진보 성향의 ‘우국민’(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이 6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기 퇴진으로 문 대통령이 우리법연구회·국제법연구회 회장 출신의 김명수 대법원장을 지명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또 “적폐청산을 프레임으로 내걸면서 인사 안배에 소홀한 측면”(한 교수)도 있다. 실제 현 정부 때 추천된 대법관이 절반을 넘은 2018년부터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여순 반란 민간인 희생자 사건 등에서 진보 진영의 시각과 일치하는 판결이 나왔다는 평가가 있다. 이후 이재명 경기지사도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고, 지난 3일에는 전교조가 7년 만에 법외노조 지위를 벗었다.
 
4대 합의기구 구성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4대 합의기구 구성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헌법재판소도 유사하다. 우리법연구회 창립멤버인 유남석 헌재 소장은 문 대통령에 의해 2017년 11월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됐고 이듬해 9월 소장으로 임명됐다. 헌재의 9명의 구성원 중 6명이 문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추천 인사다. 지난 5월 헌재는 범여(汎與)에 의한 패스트트랙이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지난해 1월부터 5년 만에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등)의 위헌 여부를 다시 심리하기 시작한 걸 주목하고 있다. 1992년부터 시작해 2015년까지 헌재가 7차례에 걸쳐 합헌이라고 결정했던 사안이다.
 
야당에선 사법부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7월 국회 연설에서 특히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수장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라. 사법사에 어떤 대법원장으로 기록될지 두렵지 않냐”고 질타한 일도 있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일각에서는 현 대법원의 구성이 ‘김경수 경남지사 무죄 판결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과잉 해석까지 나온다”며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이미 손상이 생겼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경우 감사위원을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독립성을 강조하며, 청와대와 맞서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가 타당했는지에 대한 감사 문제가 최근엔 최 원장의 감사위원 제청권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행정학)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감사원장의 사퇴를 여당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자체가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의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위는 한상혁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데, 3명은 대통령과 여당, 2명은 야당 추천 몫이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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