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기업 들어오면 허위매물 사라지나”…뜨거운 중고차 시장 논란

중앙일보 2020.09.07 07:00
서울 성동구 용답동 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 뉴스1

서울 성동구 용답동 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 뉴스1

50대 직장인 변모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2년 된 싼타페 차량을 950만원에 판다는 글을 보고 경기도 부천의 중고차 매매단지를 찾아갔다. 차 값이 너무 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주행거리가 길었고, 차 사진이나 사이트의 구성이 깔끔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매매단지에 도착하자 건장한 사람들이 변씨를 둘러싸더니 ‘다른 차가 있는데 그걸 계약하자’며 후미진 곳으로 데려갔다. 변씨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차값이 싼 것을 위안 삼으며 계약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서명 직후 판매업자가 ‘이 차는 두 달에 한 번씩 정비가 필요하니 꼭 와서 정비를 받으라’는 말을 듣고 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씨는 “단계 단계마다 사기라는 징후가 있었는데 정보가 부족한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꼼짝없이 속게 되더라”고 말했다.

 

중기부, 생계형 적합업종 결정 고민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놓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일부 부적합(중소기업으로 제한하는 게 부적합)’ 의견을 낸 뒤 6개월 이내에 중소벤처기업부가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결정이 미뤄지고 있다.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 등 대기업이 진출하면 시장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량 실직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완성차 업계는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 제고와 소비자 편익을 위해 대기업 진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경연 조사, 국내 중고차 시장 ‘혼탁하다’ 76%

중고차 허위매물 의심 사이트 조사. 사진 경기도

중고차 허위매물 의심 사이트 조사. 사진 경기도

현재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가장 큰 소비자 불만은 허위매물이나 사기 같은 혼탁한 시장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중고차 시장 소비자 인식’ 설문조사를 보면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됐다’는 응답이 76.4%나 됐다. 차량 상태 불신(49.4%), 허위∙미끼매물 다수(25.3%) 등의 이유에서다. 실제로 경기도가 최근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 31곳을 조사했더니 등록 차량의 95%가 허위 매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차 업계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허위매물 등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이들은 중고차 연합회 회원사가 아니라 범죄집단이 연루된 일부 업체라는 것이다. 중고차 매매업자 단체인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이강희 부장은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온다고 허위매물 같은 범죄행위가 근절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자체 단속을 강화하고 엄정하게 처벌할 문제이지, 중고차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고차업계 “허위매물은 일부, 車이력 이미 공개”

중고차 매매 서비스 케이카 홈페이지.

중고차 매매 서비스 케이카 홈페이지.

중고차 이력 등 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고차 업계는 할 말이 많았다. 또 다른 중고차 업계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지해성 사무국장은 “자동차 이력은 국토교통부 ‘자동차365’ 사이트에 가면 이미 다 공개가 돼 있다”며 “이력이 불투명하다기보다 홍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고 이력의 경우 보험개발원이 유료로 판매하고 있다.
 
중고차 업자들이 과연 영세 소상공인이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차값 자체의 단위가 높아서 그렇지 매출이 아닌 수익을 따져보면 영세한 게 맞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신차 시장의 2.4배, 독일도 2배 

미국 중고차 및 신차 판매 사이트 카맥스 홈페이지. 마음에 안 들면 1주일 내 환불, 인증된 중고차 등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 중고차 및 신차 판매 사이트 카맥스 홈페이지. 마음에 안 들면 1주일 내 환불, 인증된 중고차 등을 내세우고 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떠나 국내 중고차 시장이 낙후된 건 사실이다. 미국은 지난해 중고차 거래가 4081만대로 신차 구입(1706만대)의 2.4배에 달했다. 유럽 최대 시장인 독일도 중고차 시장 규모가 719만대로 신차(360만대)의 2배였다. 반면 한국은 중고차 판매 224만대, 신차 178만대로 중고차 시장이 신차의 1.2배에 그쳤다. 
 
미국과 독일의 중고차 시장이 규모가 크고 활성화한 것은 시장 구조 자체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참여자가 단순한 국내 중고차 시장과 달리 미국은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파는 완성차 업체, 중고차만 파는 독립 딜러와 온라인 업체, 중고차 대량 매각 알선업체(리마케터), 중고차 경매장 등 다양하다. 여기에 중고차 이력을 제공하는 정보업체, 잔존가치와 시세정보 제공업체, 재고와 고객관리 통합 솔루션 업체 등 다양한 사업 형태까지 파생돼 나왔다. 
 
국내에도 통합 솔루션을 표방하며 인증 중고차를 판다는 업체들이 더러 있지만 모두 오프라인 사업을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데 불과해 소비자 신뢰 제고엔 역부족이다.   
 
대표적인 완성차 업체인 현대·기아차는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라는 논리를 편다. 중고차 시장하면 혼탁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제조사가 직접 관리하면 양질의 중고차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브랜드 관리 차원”

볼보 등 국내 수입차 브랜드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 볼보자동차코리아

볼보 등 국내 수입차 브랜드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 볼보자동차코리아

앞서 한경연 설문조사에서도 51.6%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찬성했다. 반대한다는 응답(23.1%)보다 높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반떼가 고장 나면 현대차를 욕하지, 중고차 매매상을 욕하지 않는다”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한다면 매출을 높이기보다 브랜드 관리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수입차 업체들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는 것도 품질 관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내년 전기차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 제조사의 직접 관리 필요성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가솔린·디젤 등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에 대한 국내 정비 네트워크가 미비한 상태에서 앞으로 소비자가 믿고 구매할 만한 전기차가 과연 얼마나 되겠냐는 얘기다. 여기에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 사업이 허용돼 있는데, 국내 완성차 업체만 역차별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중고차의 잔존가치 평가를 어떻게 전문화·체계화할 건지 의문이 남는다. 또 수입차 업체들의 경우처럼 완성차 업체가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은 인증 중고차의 할부·리스 등을 통해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현대캐피탈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중고차 시장 진입을 통해 모빌리티 서비스 전반으로 시장을 확대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점유율 제한 등 상생안 마련을”

상생 방안을 마련해 완성차 업체가 소비자 편익을 증진하고 중고차 업계도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게 해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점유율을 제한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상생 방안을 마련한 뒤 완성차 업체의 진입을 허용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기아차가 들어와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한다고 하면 수입차의 경우처럼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시장이 양분화하지 완성차 업체가 시장을 독식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카닷컴 등의 경우처럼 과거 대기업이 들어왔다가 나간 경우에도 시장을 독식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오히려 시장이 다양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일정 점유율을 정하고 10년간 유지하는 일몰제 등을 포함한 상생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