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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대통령의 불안한 ‘라스트 댄스’

중앙일보 2020.09.07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승현 정치에디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7)은 폭군으로도 불렸다. 조던이 뛴 NBA(미프로농구협회) 시카고 불스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그를 추앙했지만, 두려워하거나 미워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훈련 때에도 실력이 떨어지는 동료에게 끊임없이 트래쉬토크(trash talk·상대를 기죽이는 조롱과 모욕)를 날렸다.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성공 신화를 기록한 10부작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더 라스트 댄스’에서 조던은 자신의 권위적인 행적을 시인했다.
 

정권 성패의 승부처 맞은 문 정부
조던이 ‘라스트 슛’ 직접 던지듯
대통령, 최일선서 국민 설득해야

이유가 있었다. “우승할 수 있는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수준을 못 맞추면 차라리 팀을 떠나는 게 낫다”는 원칙이었다. 냉혹한 승부사 조던의 진면목은 그다음 설명에 있었다. “내가 하지 않는 걸 팀원들에게 시킨 적은 결단코 없었다.” 챔피언의 자격을 갖춘 팀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피땀을 쏟았고, 같은 수준의 노력을 동료에게 요구했다는 얘기다.
 
NBA 6회 우승 신화(1991, 92, 93, 96, 97, 98년)는 그런 승부 근성, 솔선수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 라스트 댄스’(마지막 6번째 우승을 거둔 시즌을 일컫는 말)에서의 ‘더 라스트 슛’도 그의 몫이었다. 동료들은 “조던 본인도, 팀원들도 그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환희의 순간을 회고했다. 마지막 역전슛을 던진 뒤 정지 화면처럼 팔과 손가락을 펴고 서 있는 명장면은 초현실적인 대단원이었다.
 
위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 남다름이 평범한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우리가 갖지 못한 자질과 용기, 집념과 통찰, 인생을 관통하는 주도면밀한 인격은 부러워할 수준을 넘어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그 에너지가 이 사회의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우리가 위인의 존재에 감사하게 되는 이유다. 여생에 별다른 오점을 남기지 않는다면 조던의 다큐멘터리는 명실상부한 ‘디지털 위인전’이 될 것이다.
 
조던의 성공기를 보며 문재인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 역시 ‘라스트 댄스’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4개월도 남지 않은 집권 4년차, 다가올 5년차는 문재인 정부의 성패에 결정적인 시간이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입이 닳도록 읊었던 여권의 승부처인 셈이다. 위인전의 내용까지 좌우할 마지막 ‘게임타임’은 시작됐다.
 
그러나, 중차대한 순간에 청와대가 보여주는 모습은 불안하기만 하다. 의사 파업·부동산 문제·코로나19 재난지원금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최근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게시된 ‘간호사 메시지’는 예상 못한 폭발음을 냈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등 야박한 표현에 ‘편 가르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관리하는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라며 비상 회의를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SNS가 불러온 파문에 참모들이 자책 회의를 했다는 소식은 더 실망스럽다. 대통령이 페이스북 글을 직접 쓰느냐, 안 쓰느냐는 논쟁으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하찮은’ SNS 실수로 넘어가길 바란 것 같은데, 오산이다. 대통령 소통의 진정성이 훼손된 상황은 청와대의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국민에게 활짝 열린 것 같았던 디지털 소통이 단지 기획된 일방향 메시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문 대통령의 SNS가 ‘유체이탈’의 향기를 풍겼던 이유가 있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촌평이나 조은산의 ‘시무 7조’에서 확인되듯 열정 가득한 한 문장이 레거시 미디어를 무색하게 하는 시대다. 대통령의 언행과 글은 물론 신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진정성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가서야 되겠는가. 거침없는 소통의 시대에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만 퇴보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문 대통령의 2017년 취임사를 떠올리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승부처에서 리더는 자주 보여야 한다. 폭군으로 비치든, 위선자로 비난받든, 자신의 언어로 원칙과 맥락을 설득해 내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를 ‘갈라치기’ 해놓고 며칠 뒤 “최일선에서 의료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에게 고마움을 거듭 전한다”는 공치사로 어물쩍 넘기는 식이면 곤란하다.  
 
마지막 슛이 조던의 몫이었듯, 문 대통령이 직접 실력을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
 
김승현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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