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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진국도 호평한 ‘마약 공조 수사 시스템’ 살려가야

중앙일보 2020.09.07 00:25 종합 33면 지면보기
정대표 변호사·전 한국소비자원 원장

정대표 변호사·전 한국소비자원 원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뷰티풀 보이’는 마약 중독자와 그 가족의 피폐해진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세상이 마약중독자를 쓰레기라 부르고 사람 취급도 안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아름답고 소중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묘사했다.
 

권한 쪼갠 수사 개시 방식에 문제
밀수 범죄 수사 축소로 공백 우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재활 실장도 25년간 마약에 빠진 아픈 경험이 있다. 마약을 사려고 신장 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어머니 앞에서 혈서까지 쓰고도 사흘도 안 돼 다시 마약에 손댔다고 한다. 이처럼 마약은 한번 경계가 무너지면 좀처럼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전에 마약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검찰과 경찰이 전력을 다해 마약을 차단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의 통계를 보면 더는 ‘마약 청정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이래 마약 사범이 매년 1만 명 이상 적발됐다. 지난해에는 1만600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약 소비층도 세대와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연령층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 14세 아동도 적발됐다.
 
최근에는 일반인도 마약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해외 마약 공급자로부터 직접 마약을 밀수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마약이 확산하는데도 공급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코로나19 팬데믹처럼 대한민국 전역에 마약의 해독이 퍼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범국가 차원의 마약 통제에 주력하는 관점보다는 권한 나누기식으로 수사 개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조정안에 따르며 검찰은 수출입 마약 가액 500만원 이상인 경우에 한정해 직접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은밀히 거래되는 마약에 시장가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사를 시작할 때 마약 가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래서는 과연 실효적으로 마약 범죄에 대처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
 
종래 검찰이 주로 담당해오던 밀수 범죄 등에 대한 수사 범위가 대폭 축소됨에 따른 수사 공백도 예상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국제 마약밀매 조직의 주요 시장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개혁은 잘못된 것을 옳게 고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마약 수사는 선진국도 부러워할 만큼 잘 진행됐다. 공연히 권한 나누기식으로 추진하다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검찰은 오랜 기간 여러 국가와 공조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보 교환, 인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마약 반입을 차단하고 해외 도피 마약 사범을 직접 추적해 검거했다. 세관 등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국내로 밀반입되는 마약 수령책과 그 해외 공급책을 검거해 공급차단에 힘써 왔다.
 
물론 정부에서도 경찰의 마약 수사 역량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래도 경찰의 역할을 증대시키면서도 검찰이 가진 수사 노하우나 국제 공조 시스템, 300명이나 되는 마약 전문 수사관의 능력을 사장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
 
마약 범죄는 초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경제 범죄다. 범죄 수익을 박탈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차단이 어렵다. 이 때문에 검찰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 수사권을 조정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마약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수사권 범위 조정에 앞서 검·경 두 기관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협업이나 정보 공유를 위한 실질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수요억제 측면에서는 마약 중독자가 치료나 재활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이나 태국처럼 ‘마약 수사 전문청’을 설립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마약 청정국가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란다.
 
정대표 변호사·전 한국소비자원 원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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