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현미 “청약 기다리라”더니…서울 분양절벽

중앙일보 2020.09.07 00:04 경제 1면 지면보기
재건축을 진행하던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은 조합원들이 분양가에 반발해 조합 임원을 모두 해임, 사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뉴스1]

재건축을 진행하던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은 조합원들이 분양가에 반발해 조합 임원을 모두 해임, 사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뉴스1]

가을 ‘대목’을 맞은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이 때아닌 빙하기에 빠졌다. 쏟아지는 규제에도 ‘로또 아파트’를 좇는 수요가 몰리며 연초부터 청약 열풍이 이어졌지만, 정작 분양 공급이 바싹 말랐다. 지난 7월 29일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영향이 크다.
 

9월 분양, 6일 이후 말일까지 ‘0’
상한제에 재개발·재건축 직격탄
둔촌주공 등 사업 줄줄이 스톱
분양 대목 가을에 분양기근 불러
연말까지 공급 1000가구 안될 수도

부동산리서치업체인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6일 기준으로 이달 말까지 서울 새 아파트 분양물량은 ‘0가구’다. 이달 공급은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청약을 받은 신목동 파라곤(신월4구역) 153가구뿐이다.
 
분양 가뭄 사정은 연말까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리얼투데이 집계대로라면 다음 달 3000여 가구가 분양 예정이지만, 아직 분양 일정이 확정된 곳이 없다. 11월 1500가구, 12월 1900가구 예정 물량도 분양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분양예정단지가 모두 상한제 직격탄을 맞은 재개발·재건축 단지라서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서울 새 아파트 분양물량이 1000가구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웅식 리얼투데이 분양담당은 “상한제 시행으로 후분양을 고민하며 분양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라며 “다들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분양일정을 내년으로 미루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9~10월은 연간 분양물량이 가장 많은 시기다. 그런데도 서울 분양시장이 ‘시계 제로’에 빠진 것은 상한제를 빼놓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일반 분양가에 제약을 받게 된 재개발·재건축 단지 입장에선 서둘러 분양할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집을 지을 빈 땅이 거의 없는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이 멈춰서면 신규 분양도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앞서 상한제가 시행됐던 2007년 무렵에도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은 한동안 공급 절벽이 왔다. 2007년 서울 아파트 공급(인·허가 기준)은 5만 가구였지만, 상한제 시행 이후 2008년 2만1900가구, 2009년 2만6600가구에 불과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7월 말 이전에도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제약이 있었다. 정부가 고분양가 사업장 분양보증 처리기준을 적용해 분양가를 규제했다. 주변 시세의 100%를 넘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 보증을 해주지 않았다.
 
상한제 시행으로 제약은 더 커졌다. 국토교통부는 상한제 적용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내다본다. 보증공사 기준보다 낮다.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는 땅값(택지비)에 국토부가 매년 2회 발표하는 ‘기본형 건축비’(올 3월 기준 3.3㎡당 633만6000원), 가산비를 더해서 결정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 입장에선 원하는 가격대로 일반분양할 수 없다면 분양을 연기하거나 사업 자체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반 분양가가 낮아질수록 조합원이 내야 하는 자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이 그런 경우다. 보증공사와 분양가 줄다리기 끝에 보증공사가 제안한 분양가로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신청까지 했다. 하지만 조합원 반발로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이 모두 해임됐고 사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조합은 3.3㎡당 3550만원에 분양하려 했지만 보증공사에선 2978만원을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보증공사 제안대로라면 조합원당 평균 1억2880만원 부담이 늘어난다”며 “20년을 기다렸는데 청약 당첨자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새집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약가점 최저 60.6점, 30대 당첨 사실상 불가…“김현미 현실 모르는 소리”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가격이나 분양가격 상승률이 높아 이상 과열 징후가 있는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제도다. 그간 기준이 까다로워 적용이 쉽지 않았는데 정부가 지난해 8월 상한제 지역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예컨대 상한제 적용 필수요건은 ‘직전 3개월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에서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뀌었다. 현재 서울 대부분 지역(18개 구 309개 동)과 경기도 과천·광명·하남시의 일부 지역(13개 동)이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자 새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던 청약 대기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30대에게 “청약을 기다리라”고 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31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김 장관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하는 30대에 대한 질문에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저희는 조금 더 (매수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 청약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없는 데다 30대는 사실상 당첨이 어려워서다. 국내 청약제도는 무주택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 부양가족 수를 따진다. 지난 7~8월 서울 새 아파트 당첨자의 평균 최저 청약가점은 60.6점이다. 예컨대 4인 가족인 30대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청약가점 만점을 받아도 57점을 넘기 어렵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는 수요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식으로 규제가 아니라 수요 분산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