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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하려 코로나 이용…정부, 정책 철회 자초한 셈

중앙일보 2020.09.07 00:04 종합 6면 지면보기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대정원 확대 등의 정책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의사 파업이 일단락 됐다. 하지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비대위가 만장일치로 의사국가 고시 시험 거부를 계속하기로 결정하면서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의대협은 " 의협과 당정의 졸속 합의 이후 보건복지부와 여당의 표리부동한 정치 행보에 많은 회원이 분노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7일로 예정된 전공의·전임의 진료 복귀도 일단 늦춰졌다. 
 

“설마 의사들이 시위하겠나” 오판
의료계와 협의 없이 밀어붙여
전문가 “정치인 공약 내걸 일 아니다”

전공의 본격 파업은 지난달 21일 시작했는데, 17일 동안 환자 진료에 차질이 심화됐다. 이번 파업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약 20년 만이다. 그 때는 선배 의사들이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전공의가 처음부터 이끌었다. 전공의 파업은 대학병원 진료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에 훨씬 충격이 크다.  
 
정부·여당 주장대로 지역이나 진료 과목 간 의료 격차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걸 해결하려는 정책이 너무 거칠었기에 '원점 재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정책이 철회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왜 실패했을까.  
 
복지부-의협 합의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복지부-의협 합의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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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코제코'
의료계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오랑캐를 활용해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고사성어 이이제이(以夷制夷)에 코로나를 대입했다. 처음에는 정부가 코로나19를 이용했고, 나중에 의료계가 코로나를 역이용해 제압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23일 민주당과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공공의료와 의료인력 확충은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번지면서 의료인력 부족의 일부 단면이 드러나자 이를 활용해 밀어붙였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 상황인데 의대정원 확대 등을 추진해도 설마 의사들이 데모를 하겠느냐'라고 판단한 것 같다. 코로나 확산이 정책 타이밍이라고 여겼는데, 결과적으로는 상황을 완전히 오판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시기에 세계에서 이런 정책 내놓고 혼란을 일으키는 나라가 어디에 있냐.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지난달 31일 유투버에서 "코로나 시국에 코로나와 합세해서왜 의사를 공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의약분업 파동 때는 의대 교수 사이에 의견이 갈렸지만 이번에는 거의 모든 의대 교수들이 일치단결해서 (반대하고), 일반인도 분개한다"고 지적했다.  
 
②소통 부재가 부른 오만
정부·여당은 정책을 발표하기 전 "충분히 대화하고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공의대 설립은 20대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고 의견을 일부 수렴했다. 하지만 지역의사 신설, 기초의학 의사 양성 등은 이번에 처음 공식화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우리와 협의한 적 없다"고 말한다. 이상도 서울아산병원장은 "정책 수립 단계에서 법정단체인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면 극단적인 대립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의과대학 학장은 "의대정원을 늘리면서 의대학장협의회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③'의료 정치' 실패의 반복
의료는 매우 복잡한 이슈다. 관련 플레이어가 한 둘 아닌데다 건강보험·고령화·필수의료 등등 실타래가 엉켜있다. 그런데 의대 신설이 '정치 게임'으로 변질했다. 전병율 교수는 "공공의대 자체도 문제지만 왜 부속병원도 없고, 교수요원도 뽑기 어려운 전북 남원에 지으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때 9개의 의대를 남발했는데, 지역 나눠먹기 식으로 배분했다. 학교당 한 해 정원 40~50명으로 쪼갰다. 의료계는 최소 80명은 돼야 '규모의 경제'가 된다고 본다. 부속 병원 없는 기이한 의대가 등장했고, 부실한 기초의학 교육 탓에 학생들도 피해를 봤다. 
 
그러다보니 서남대 의대가 결국 문을 닫았고, 관동대 의대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김영훈 원장은 "정치인들이 의대 설치나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이게 어떤 영향이 있는 지도 모른다. 목포· 남원·여수·순천·포항 등이 나선다. (의대가) 넘버원 공약이 돼서 그것만 하면 재선이 확실해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해서 의료를 병 들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④묵은 과제일수록 푹 익혀야
의사 확대는 20년 된 묵은 과제다. 이번에 정부·여당이 '의사 늘리면 좋지 않으냐'는 여론을 등에 업고 단숨에 밀어붙이려다 탈이 났다. 전병율 교수는 "공청회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문과 늘리는 것과 의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의 조급함도 한몫 했다. "하필 코로나에 추진하는냐"고 묻자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코로나가 내년까지 이어질텐데, 그 때 추진하면 이미 대선 국면에 접어들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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