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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죽음 부른 ‘디지털 교도소’…또 도마 오른 신상공개

중앙일보 2020.09.07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디지털 교도소에는 숨진 채 발견된 A씨의 신상 정보가 공개돼 있다. [디지털 교도소 캡처]

디지털 교도소에는 숨진 채 발견된 A씨의 신상 정보가 공개돼 있다. [디지털 교도소 캡처]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사이트인 ‘디지털 교도소’에 개인 정보가 올라간 20대 남자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사이트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지인 능욕’ 했다며 사진·학교 올려
억울함 호소한 20세 숨진 채 발견

“한 사람 인생 박살낸다” 폐쇄 주장
일부선 “성범죄 처벌 약해 필요”

지난 7월 디지털 교도소는 음란물에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지인 능욕’ 죄목으로 고려대 학생 A씨(20)의 사진과 전화번호, 학교·학과 등을 공개했다. 이후 A씨는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URL을 눌렀는데 그때 해킹을 당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지난 3일 오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와 관련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이용자들은 디지털 교도소를 폐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안을 두고 “허영심에 이끌려 정의의 사도가 된 양 법 위에 군림해 무고한 한 생명을 앗아갔다”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박살 내는 디지털 교도소는 폐쇄돼야 한다”는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그러자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B씨가 텔레그램에 ‘디지털교도소 공지’라는 공개 방을 만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어떤 해커가 학생 한명 잡자고 휴대폰 번호를 해킹해 텔레그램에 가입하고, 그 계정으로 지인 능욕을 하느냐”며 “비슷한 시기 모르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줬다는 A씨의 주장도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B씨는 또 “A씨에게 텔레그램 설치 및 삭제, 인증문자, 대화 등의 내역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으나 어떠한 증거도 내지 않고 억울하다는 주장만 몇 개월동안 되풀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A씨의 유족들과 경찰 관계자를 향해 “고인이 정말로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다면 스마트폰 디지털 포렌식과 음성파일 성문 대조를 통해 진실을 밝혀 달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교도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은 적지 않다. 소극적인 범죄자 신상공개와 솜방망이 처벌 등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이번 사건을 두고도 일각에서는 “지인 능욕이라는 중대한 사건의 피해자보다 디지털 교도소 자체에 초점 맞춰지는 게 화난다” “나라에서 제대로 했으면 이런 사이트가 만들어졌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동유럽국가 벙커에 설치된 방탄 서버’를 통해 개설됐다는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6월 처음 등장했다. 이날 2시 현재 아동학대·살인범을 제외한 성범죄자만 77명의 신상이 공개돼 있다. B씨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2만명 정도다.
 
반면 무고한 인물을 게시하는 등 부작용과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디지털 교도소는 밀양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나이·출신 지역이 다른 동명이인의 정보를 공개했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 6월 한 게시글에서 “돈 없어서 삭히지 마시고 시원하게 이들(신상공개 대상)의 자살을 최종목표로 댓글을 달아달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전문가들은 B씨의 디지털 교도소 운영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진단한다. 정보통신망법 70조는 온라인상에 적시한 내용이 거짓인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사실인 경우에도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양진영(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밝혀진뒤 법 적용 여부가 판가름 나겠지만 외견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한 일이라면 법원에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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