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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아재 이어 할매 입맛 뜬다…가수 청하도 빠진 '할메니얼'

중앙일보 2020.09.06 09:00
강원도 강릉시의 명소로 꼽히는 이 카페의 인기 메뉴는 흑임자 라떼다. 주문하면 평균 3~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인스타그램 캡처

강원도 강릉시의 명소로 꼽히는 이 카페의 인기 메뉴는 흑임자 라떼다. 주문하면 평균 3~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청하(25)는 팬들 사이에서 ‘청할매’로 통한다. 평소 약밥, 모나카, 양갱 등을 즐겨 먹기 때문이다. 과자 중에서는 맛동산을 가장 좋아한다. 그는 한 방송에서 “매니저가 나이를 속인 게 아닌지 의심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에 출연한 배우 여진구(24)는 유튜브를 보며 손수 만 든 식혜가 가방 속에서 새고 더운 날씨에 상해버리자 안타까워했다.
 
패션을 넘어 식품업계에도 뉴트로(new+retro·새로운 복고) 열풍이 거세다. 쑥·흑임자·인절미·식혜 등을 찾는 2030 세대가 늘고 있다. 달콤한 것을 즐기는 초딩 입맛, 얼큰하고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아재 입맛에 이어 요즘은 할매 입맛에 맞춘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할메니얼’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할메니얼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보다 익선동, 연남동 한옥에 자개장, 소반 등으로 꾸며진 개인카페를 선호한다. 상호명도 ○○당(堂), ○○상회 등으로 예스러운 곳들이다. 인기 메뉴는 쑥·흑임자 라떼다. 집에선 직접 식혜·수정과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인증한다. 이들은 동묘시장을 둘러보며 쇼핑하고, 을지로 호프집 앞에서 맥주를 즐기는 ‘힙지로 열풍’을 만들기도 했다.  
 

인절미·흑임자로 만든 초코파이·아이스크림 

찰초코파이 인절미와 흑임자 맛은 출시 이후로 76억원어치 팔렸다. 사진 오리온

찰초코파이 인절미와 흑임자 맛은 출시 이후로 76억원어치 팔렸다. 사진 오리온

할메니얼을 사로잡기 위한 움직임은 다양하다. 오리온은 초코파이에 인절미·흑임자 스프레드가 들어간 찰초코파이 인절미와 찰초코파이 흑임자 두 가지 맛을 지난해 말 내놓았다. 지금까지 약 76억 원어치 팔렸다. 오리온 관계자는 “한국 전통의 맛을 초코파이에 접목한 색다른 제품”이라며 “유행에 민감하고 이색 조합에 반응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지난 1975년 출시된 빙그레의 장수 브랜드 비비빅은 흑임자, 인절미, 단호박 맛을 출시하면서 '할매 입맛'에 열광하는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사진 빙그레

지난 1975년 출시된 빙그레의 장수 브랜드 비비빅은 흑임자, 인절미, 단호박 맛을 출시하면서 '할매 입맛'에 열광하는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사진 빙그레

 
빙그레는 지난해 3월 출시한 비비빅 흑임자 인기에 힘입어 최근 투게더 흑임자 맛도 내놨다. 두 상품은 각각 월평균 80만개, 6만개씩 팔리고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비비빅과 투게더 모두 장수 브랜드로 최근 매출 상승 정체기가 왔는데, 젊은 층이 좋아하는 새로운 맛 출시로 판매량이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 에 배스킨라빈슨의 아이스 모찌 흑임자, 해태제과 쌍쌍바 미숫가루 등 전통 간식 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쏟아지고 있다.  
 

고령층 타깃 신제품 뜻밖에 2030세대 열광    

편의점 CU가 강릉 초당순두부와 손잡고 출시한 강릉초당 순두부아이스크림. 사진 CU

편의점 CU가 강릉 초당순두부와 손잡고 출시한 강릉초당 순두부아이스크림. 사진 CU

유통채널도 할메니얼 트렌드에 가세했다. 편의점 CU는 롯데푸드와 손잡고 지난 5월 빵빠레 흑임자를 선보였다. 판매 시작과 동시에 CU 아이스크림 매출 순위 10위에 들 정도로 인기다. 지난 2월 강원도 강릉시 맛집 초당순두부와 함께 출시한 초당순두부 아이스크림은 두 달 만에 100만개 넘게 팔렸다. 현재 CU에서 살 수 있는 흑임자 관련 상품만 20개가 넘는다. 양갱, 모나카, 경단도 인기가 많다. BGF리테일 스낵식품팀 이용구 MD는 “CU는 제조업체들과 손잡고 할매 입맛 관련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린푸드의 건강 식단 브랜드 그리팅이 선보인 흑임자죽. 사진 현대그린푸드

현대그린푸드의 건강 식단 브랜드 그리팅이 선보인 흑임자죽. 사진 현대그린푸드

 
고령층을 위해 출시한 제품이 젊은 층에 뜻밖에 인기를 끌기도 했다. 현대그린푸드가 선보인 건강 식단 브랜드 그리팅 죽 매출의 52%는 2030세대에서 나온다. 해초 전복죽, 유근피 녹두 삼계죽 등이 인기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과거 어르신들이 아플 때 먹는 식사대용으로 여기던 죽을 2030세대는 간 편한 식사, 건강식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매출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비비고 흑임자죽을 출시하며 “건강에 대한 관심, 복고 트렌드 영향으로 젊은 세대가 ‘할매 입맛’ 식품에 열광하고 있어 관련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할메니얼이 즐기도 록 흑임자죽으로 아이스크림, 라떼, 쉐이크를 만드는 레시피도 공개했다.  
 

"불황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레트로 열풍" 

서울 중곡동의 빈티지숍 다브앙에서 판매 중인 복고풍 원피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 중곡동의 빈티지숍 다브앙에서 판매 중인 복고풍 원피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전문가들은 불황에 코로나19가 더해지면서 젊은 층의 ‘할매 입맛’ 열풍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레트로 열풍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라며 “일본에서도 경기침체 시기에 과거 호황기에 대한 향수로 복고 트렌드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군다나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건강을 챙기려는 심리가 더해지며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쑥, 흑임자, 인절미 같은 식재료가 과거 ‘단짠’ 식품을 제치고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계의 ‘할매 열풍’은 식품보다 한발 앞서 시작됐다. 꽃자수를 수놓은 알록달록한 스웨터나 카디건, 강렬한 색감의 원피스, 큼직한 액세서리 등 ‘할매 스타일’의 의류·잡화를 파는 빈티지숍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 지난해 돌체앤가바나, 베트멍 등 명품 브랜드들의 패션쇼에서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즐겨 입는 옷과 비슷한 옷이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그래니시크(granny chic·세련된 할머니)’ 또는 ‘그랜드밀레니얼(grandmillennial)’이라고 표현한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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