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흑인 머리 훔쳤다" 13만명 싸움난 아델 스타일…화사도 논란

중앙일보 2020.09.05 05:00
“백인이 흑인들의 머리 스타일을 훔쳐왔다. 다른 문화를 도용하지 말라.”
 

아델의 사진이 쏘아 올린 '문화적 전유' 논란
카리브해 유래 축제 즐기려 자메이카풍 머리
"백인이 흑인 머리 훔쳤다" … 댓글 13만 공방
국내서도 '관짝소년단' 등 놓고 논란 벌어져

"이건 그냥 평범한 카니발 복장일 뿐이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아델(32)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사진 한장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사진 속에서 아델은 자메이카 국기 무늬의 비키니를 입고, 노란색 깃털 장식을 어깨에 둘렀다. 문제가 된 건 흑인들이 머리카락을 매듭 모양으로 땋아 올리는 일명 '반투 올림머리(Bantu knots)'다. 
아델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자메이카풍의 복장과 머리를 선보였는데, 특히 흑인들이 하는 반투 올림머리가 논란이 됐다. 백인 여가수가 흑인의 머리를 빼앗았다는 비판과 단지 평범한 축제 복장이란 반론이 맞서면서 이 사진엔 댓글이 13만 개가 넘게 달렸다. [아델 인스타그램 캡처]

아델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자메이카풍의 복장과 머리를 선보였는데, 특히 흑인들이 하는 반투 올림머리가 논란이 됐다. 백인 여가수가 흑인의 머리를 빼앗았다는 비판과 단지 평범한 축제 복장이란 반론이 맞서면서 이 사진엔 댓글이 13만 개가 넘게 달렸다. [아델 인스타그램 캡처]

 
그의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글들과 이에 반박하는 글들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이 사진에는 13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아델이 이처럼 자메이카풍으로 꾸민 건 영국 런던에서 해마다 8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노팅힐 카니발 축제를 축하하기 위해서다. 노팅힐에 많이 거주하던 카리브해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기 위해 1964년 시작한 작은 음악회가 시초가 됐다. 
아델의 평소 모습. 그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세계적인 팝가수다. [중앙포토]

아델의 평소 모습. 그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세계적인 팝가수다. [중앙포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행사가 취소되고 온라인으로만 진행됐다.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중인 아델은 멀리서나마 카리브해 국가인 자메이카풍 복장과 머리를 하고 축제 기분을 낸 것이다.
 
이처럼 이유가 있는 헤어 스타일이었음에도 논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반투 머리 흑인들, 학교·직장서 차별 경험 … 차별 금지법까지

미국 ABC뉴스, 영국 BBC, 가디언 등 외신은 아델의 사진이 이른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 논란을 촉발시켰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문화적 전유란 인종 차별과는 개념에 차이가 있다. 'appropriation(전용‧도용)'이란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특정 문화나 정체성의 요소를 다른 문화의 구성원이 가져다 취하거나 이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지배적인 문화의 구성원이 차별받거나 상대적으로 약자의 문화를 가져올 때 논란이 생긴다.
 
한 흑인이 한 반투 올림머리. [트위터 캡처]

한 흑인이 한 반투 올림머리. [트위터 캡처]

미 윌리엄스 칼리지의 르 론다 마니골트 브라이언트 교수는 문화 전유 현상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유동적인 문화의 교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이는 다른 사람의 문화, 지적 재산, 스타일 등을 허락 없이 가져다 쓰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진단했다.
 
SNS 등을 통해 다른 문화를 따라 한 모습이 빠르게 퍼져나가 해당 문화의 당사자들도 이를 많이 접하게 되면서 파장이 커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델의 반투 머리가 문제가 된 건 이 때문이다. 흑인은 강한 곱슬머리 특성으로 인해 머리를 땋아 올리는 반투 머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머리 때문에 차별받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고 직장에선 머리를 풀라는 압박을 받거나 심지어 해고까지 당한 경우가 있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에 지난해 미 뉴욕시는 직장‧학교‧공공장소에서 헤어 스타일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또 캘리포니아주는 흑인 헤어 스타일에 대한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농구계·패션계에서도 '문화 전유" 논란 

아델의 사진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 네티즌은 "아델은 우리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던 반투 머리와 문화적 전유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백인은 어떤 맥락에서도 반투 머리를 해선 안 된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인도의 터번과 비슷한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트위터 캡처]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인도의 터번과 비슷한 패션 아이템을 선보였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트위터 캡처]



반면 한 네티즌은 "(아델의 모습은) 그냥 평범한 카니발 복장"이라고 옹호했다. 자신을 "자메이카인"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아델의 복장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면서 "인터넷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소굴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 농구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 프로농구(NBA) 스타인 대만계 미국인 제러미 린은 레게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그러자 흑인 NBA 스타였던 캐년 마틴은 그를 향해 "네가 흑인이 되고 싶어 하는 건 알겠지만 너의 성은 '린'이야"라고 조롱했다. 이 발언으로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지자 마틴은 린에게 사과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인도의 시크교도인들이 착용하는 터번과 비슷한 패션 아이템을 판매했다가 “전통의상을 빼앗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블랙핑크 뮤비, 화사의 룩, 관짝소년단 …국내서도 논란 

국내에서도 이른바 ‘문화 전유’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가수 화사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고 나온 복장이 논란이 됐다. 일부 해외 네티즌들이 화사가 입은 옷은 나이지리아 전통 의상을 연상시킨다며 인종 차별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면서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 의상에 대해 “한국 스타일의 사우나 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이지리아 전통의상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인종 차별 논란이 일었던 화사(맨 오른쪽)의 복장. 하지만 방송 제작진은 이 의상은 사우나 복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튜브 캡처]

나이지리아 전통의상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인종 차별 논란이 일었던 화사(맨 오른쪽)의 복장. 하지만 방송 제작진은 이 의상은 사우나 복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유튜브 캡처]



걸그룹 블랙핑크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인도 힌두교 신 가네샤도 문제가 됐다. 일부 인도인들은 신성한 종교적 상징물이 바닥에 놓여있는 점을 문제 삼으면서 “우리의 힌두교 신은 대중음악 뮤직비디오에 등장할 장난감이나 조형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에 소속사 측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며 뮤직비디오에서 관련 이미지를 삭제했다.
 
얼마 전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고등학생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관을 들고 찍은 졸업앨범 사진을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다. 문화를 따라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나”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고교생들이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해 촬영한 졸업앨범 사진을 비판했다. [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캡처]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고교생들이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해 촬영한 졸업앨범 사진을 비판했다. [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캡처]

 
이 사진은 최근 SNS에서 인기를 끈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관짝소년단의 유래는 아프리카 가나의 한 장례식에서 관을 든 상여꾼들이 운구 도중 춤을 추는 영상이다. 이색적인 문화는 세계에서 주목받았고, 국내에선 이들에게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팀명에서 따온 '관짝소년단'이란 이름을 붙였다.
 
수전 스카피디 미 포드햄대 교수는 “특히 차용한 문화의 당사자인 공동체가 억압받거나 착취를 당한 적이 있는 소수 집단인 경우, 대상이 신성한 것일 경우 논란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 VS "상대 문화 제대로 이해해야"  

문화 전유 논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해당 문화를 순수하게 감상하고 즐기는 것인데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상대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맞선다.
 
전문가들은 특정 문화를 차용하려면 그 문화의 배경과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의 흑인학생연합 측은 유타대 기고문에서 문화 전유와 문화 감상 사이엔 차이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당신이 친구들끼리 하와이식 분위기만 낸 파티를 여는 것과 전통 하와이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다른 문화를 그냥 흉내 낸 것이지만, 후자는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계기가 된다는 주장이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