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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중앙선데이 2020.09.05 00:28 702호 30면 지면보기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BTS(방탄소년단)의 빌보드 ‘핫 100’ 석권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음악처럼 그 깊이와 넓이가 무궁무진한 세계도 없는 것 같다. 비록 빌보드 차트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 조용히 발표된 나훈아의 신곡이 내겐 BTS의 다이너마이트 못지않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훈아 신곡, BTS 못지않은 자신감
너 자신을 알라…해학적 세태 풍자

사나이 나훈아가 어린애처럼 테스형을 애타게 부른다. 테스형! 그가 작사하고 작곡했다. 노래 제목이 ‘테스형!’이다. 아직 들어보지 못한 분은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한다. 요즘 트로트 인기가 대단한데, 아마 트로트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견문이 짧은 탓이겠지만 이런 종류의 가요를 접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생활의 고단함을 토로하면서 노래는 시작된다. “어쩌다가 한바탕 / 턱 빠지게 웃는다 / 그리고는 아픔을 / 그 웃음에 묻는다 // 그저 와준 오늘이 / 고맙기는 하여도 / 죽어도 오고 마는 / 또 내일이 두렵다.” 팍팍한 삶의 아픔을 한바탕 큰 웃음에 묻으며 지내곤 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다. 오늘은 그럭저럭 보냈다고 해도 내일은 어떨까.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만 하다. 코로나19에 지친 거리를 모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듯, 엎치고 덮치는 고통이 이어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곧이어 테스형을 찾는 나훈아의 절규가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진다. “아! 테스형 /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 소크라테스형 / 사랑은 또 왜 이래 // 너 자신을 알라며 / 툭 내뱉고 간 말을 // 내가 어찌 알겠소 / 모르겠소 테스형.” 이 대목에서 필자 역시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테스형의 정체는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세상이 왜 이렇게 살기 힘든지, 사랑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 이유 좀 알려 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듣고 보는 이마다 각기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아무리 서양 철학의 시조로 불린다고 해도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삶의 고통에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는 이미 그만의 답을 하나 내놓은 게 있다. 그것은 나훈아도 알고 우리도 대부분 알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서양철학사 2500년을 대표하는 말을 꼽으라면 최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을 명언이다.
 
그런 명구가 철학 교과서에는 2000년 넘게 만능키처럼 제시되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 현실에서는 어떤가. 살아있는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죽은 교과서 속에서만 큰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은 드문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권력에 취하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와 정의와 사랑을 마치 자기만 아는 것처럼 착각하며 큰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혹시 내가 그런 것은 아닌가. 나의 무지가 함께 사는 사회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 테스형의 저 경구에 담긴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엔 겸손이 필요해 보인다. BTS의 세계적 인기 비결 가운데 하나도 겸손이다.
 
겸손과 자신감은 병행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테스형이라 부르는 자신감이 노래 감상의 재미를 더해 준다. BTS가 다이너마이트를 완전히 영어로 부른 자신감도 나훈아의 자신감과 동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봉준호가 ‘기생충’을 들고 나가 아카데미상을 ‘로컬(지역) 영화제’라고 일갈한 자신감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큰 흐름이 넘실대고 있다. 문화 한류(韓流)의 자신감을 부끄럽게 하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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