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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버전 떡볶이·튀김만두·어묵…맛깔난 추억의 먹거리 무도회

중앙선데이 2020.09.05 00:21 702호 24면 지면보기

[맛따라기] 레트로 음식의 진화

금미옥을 운영하는 이남곤·김세윤·김용준 공동대표(왼쪽부터)가 어묵·떡볶이·튀김만두 소개 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신인섭 기자

금미옥을 운영하는 이남곤·김세윤·김용준 공동대표(왼쪽부터)가 어묵·떡볶이·튀김만두 소개 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신인섭 기자

“원래 이런 맛입니다.”
 

성수동 ‘금미옥’ 세 남자의 무한도전
햅쌀 떡에 순창 고춧가루 듬뿍
수제 만두 직접 튀겨 바삭바삭
어묵은 생선살 90%로 맛 탱탱
개업 두 달 됐지만 미식가 발길

작은 분식집이 이런 도발적인 선언을 하면서 지난 7월 25일 성수동에서 문을 열었다. 메뉴는 ‘햅쌀떡볶이(350g 5000원)·수제튀김만두(3개 2000원)·어묵(1꼬치 1500원)’ 세 가지다. 이름이 옛 주막 같은 ‘금미옥(金米屋)’은 개업 두 달을 갓 넘겼지만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쏠리고 있다.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족자 세 개다. 파는 음식 내용과 만든 방법을 낱낱이 적어 놓았다. 자부심도 덤으로 읽힌다. 각 음식의 ‘원래 맛’을 밝힌 내용이라 전문을 옮긴다.
  
떡볶이 “떡볶이는 원래 이런 맛입니다. 금미옥의 떡볶이는 좋은 쌀에서 시작합니다. 집에서 먹는 그 쌀밥에 사용하는 햅쌀로 방앗간에서 바로 만든 떡으로 만들어집니다. 금미옥의 떡볶이는 좋은 고춧가루로 완성됩니다. 중국산 고춧가루가 아닌 HACCP 인증을 받은 전북 순창의 국내산 고춧가루 3가지를 블렌딩한 뒤 7가지 이상의 건어물과 채소로 만든 육수에 15가지 양념을 혼합해 하루 숙성한 양념장으로 떡볶이를 만듭니다.”
 
튀김만두 “튀김만두는 원래 이런 맛입니다. 2대에 걸쳐 수제 튀김만두를 만드는 ‘튀김만두의 장인’을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튀김만두의 장인’이 매일 수작업으로 정성껏 만드는 튀김만두를 금미옥에서 직접 튀깁니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만두를 꼭 경험해 보세요. 기존의 딱딱하고 눅눅한 튀김만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어묵 “어묵은 원래 이런 맛입니다. 금미옥 어묵은 생선살 함량이 90% 이상인 순살어묵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불지 않고 탱탱한 식감이 일품인 금미옥의 순살어묵은 새우·멸치·무·양파·파·청양고추 등으로 만든 육수와 만나 뽀얀 우유 빛깔의 깊은 국물 맛을 만들어냅니다.”
 
동업자 3인을 알고 나면 이 분식집은 무척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기존 사업만도 정신없이 바쁜 식음료업계 실력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세윤(45)씨는 2002년 ‘카페뎀셀브즈’를 창업해 19년째 잘 키워가고 있고 청담동에 클래식 주점도 운영한다. 김용준(44)씨는 2012년 서울에서 프리미엄 음료업체 ‘홀드미커피’를 시작해 전주 한옥마을까지 진출했다. 이남곤(39)씨는 2015년 ‘윤경양식당’을 필두로 성수동에서 음식점 네 곳을 운영하고 2곳을 준비 중이다.
 
금쌀집이라는 뜻의 상호는 금싸라기같이 좋은 쌀로 만든 떡을 쓰겠다, 쌀만큼은 포기하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 꽃처럼 보이는 엠블럼도 한자 쌀 미(米)의 획을 모두 뚱뚱하게 펼친 모양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은 세트(7000원). 얇고 넓적한 쥐포튀김을 꽂은 떡볶이 350g, 튀김만두 2개, 국물어묵 1꼬치를 한 쟁반에 담아 준다.
 
떡볶이

떡볶이

대표 메뉴인 떡볶이는 흔히 먹는 것보다 가래떡이 굵고(지름 2㎝) 쫀득 탱탱하다. 빨간색이 선명한 양념은 깔끔하게 칼칼하고, 감칠맛이 여운으로 남는 매운맛이다. 건지는 떡·어묵·대파가 보일 뿐이다. 동업자들이 어릴 때(1980년대) 먹던 떡볶이 맛을 되살리는 데 집중한 결과다. 소스는 김세윤씨가 2년간 실험하면서 주점 손님들 평가를 반영해 개발했다. 양념을 정확한 비율로 배합한 분말로 만들어 레시피대로 하면 누가 해도 같은 맛이 나오게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떡은 38년간 쌀집을 운영했던 김용준씨 부모님이 이용하던 성북동 떡방앗간에서 날마다 뽑아 온다. 떡값이 1㎏에 5200원으로, 일반 공장 떡의 2.5배 수준이다. 밀떡은 부드럽고 양념이 잘 배지만, 쌀떡은 쫀득한 데다 이 집 떡은 굵어서 양념을 더 진하게 했다. 당초 의도한 대로 40~50대 손님들이 “초등학교 때 먹은 떡볶이 맛이 난다”는 반응을 자주 보인다고 한다. 튀김만두는 경동시장에서 36년째 손으로 만두를 빚는 집에서 생으로 사다가 직접 튀긴다. 속에 잘게 다진 당면뿐이라 허술한 듯한 음식이지만 튀기는 솜씨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진다. 먹어 보니 표면은 바사삭 부서지고 속은 부드럽다. 서양식 페스트리 같다. 떡볶이 소스에 푹 담갔다가 얼른 먹으면 입안에서 맛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튀김만두

튀김만두

김용준씨가 단골에게 프리미엄 음료를 직배송하러 간 곳이 만둣집이었다. 처음 맛보고 무릎을 쳤다. 바로 튀겨야 맛이 좋기 때문에 생으로 받아서 업장에서 튀긴다. 가장 맛있게 튀겨지는 기름 온도와 시간을 찾다가 네 손가락을 끓는 기름에 담근 찰나도 있었다. 화상은 깊었다. 고난에 찬 실험 끝에 낮은 온도에서 시작해 몇 초마다 뒤집어 주면서 튀기다가 막판에 온도를 높이는 미엔빠오시아(面包) 방식을 찾아냈다. 이 만두는 개업 두 달 금미옥의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어묵

어묵

어묵은 이남곤씨 부인이 한때 아이들 발레를 가르치러 다니면서 서울 중앙시장 근처 어묵만 파는 집 단골이 돼 발견했다. 차져서 씹을 때마다 탄력이 잇몸에 전해지고 감칠맛이 우러난다. 뜨거울 때보다 식으면서 맛의 본질이 더 분명해지는 특이한 국물이 인상 깊다.  
 
김용준씨는 “분식집 어묵 국물이 고급 어묵탕 맛이 나서 고민”이라며 “맛을 좀 하향조정하려 한다”고 했다. 김세윤씨에게 왜 떡볶이인지 물으니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에 맞는 음식”이라고 답했다. 탄수화물의 기분전환 효과를 이유로 꼽으면서 “피곤하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당 당긴다’는 말을 하듯 심신 이완에 당분이 필요한데, 떡볶이가 초콜릿보다 흡수가 빠르다”고 했다. 지방 성분이 많은 초콜릿보다 순 탄수화물인 떡과 물엿설탕이 많이 떡볶이의 당 흡수가 빠르고 매운맛의 시너지까지 있다. 그러니 스트레스 많은 현대인, 특히 공부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새 사업을 벌인 이유는 “나이 들어 혼자 됐을 때의 경제적 자립과 식생활을 그려봤다.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식 대체식품) 사업이 매력 있어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일을 촉진했다”고 설명했다.
 
금미옥은 현재 반경 3㎞까지 배달이 되지만 연내 전국배송을 서둘러 준비하고 있다. 누가 해도 같은 맛이 나오도록 2년간 개발한 정확한 성분비율의 분말 양념이 있어 진척은 빠를 듯하다. 사업형태는 달라졌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원래 이렇다’ 한 맛은 30~40년 전 추억의 맛을 고급 버전으로 재현한 것이다. 떡볶이의 레트로(복고) 모험이 뉴트로(부흥)의 날개를 펼칠지 지켜볼 일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이택희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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