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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티’가 아닌 ‘레드 티’…여성 골퍼 천국 맞아?

중앙선데이 2020.09.05 00:21 702호 25면 지면보기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필드의 성차별

한 여성 골퍼가 그린에서 퍼팅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 여성 골퍼가 그린에서 퍼팅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포토]

골프를 할 때 가장 전장이 짧은 티잉 그라운드를 한국에선 ‘레이디 티(lady tee)’라고 부를 때가 많다. 주로 여성 골퍼가 이용하기 때문이다.  
 

라커 등 여성 배려 부족한 골프장
여성 욕탕 적어 30분 줄서기도

카트 도로 골퍼 등쪽에 있어 신경
여성용 골프채도 다양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여성의 샷 거리가 짧은 편이지만 남성보다 멀리 치는 여자 골퍼도 있다. 요즘은 화이트 티에서 치는 아마추어 여성 골퍼도 흔하다. 만약 여성들은 ‘레이디 티’에서 쳐야 한다면 남성들은 ‘젠틀맨 티’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빨간색 티를 쓰는 티잉그라운드는 레드 티(red tee)라고 해야 맞다.
 
레드 티를 레이디 티로 부르면 남자들도 힘들어진다. 남성 골퍼 중 초보자나 나이가 들어 샷 거리가 줄어든 시니어 골퍼라면 빨간색 티에서 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전장이 짧은 티를 ‘레이디 티’로 부른다면 남성이 이용하기 어렵다. 마치 여성 화장실을 남성이 이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양에서도 과거엔 레드 티와 레이디 티를 혼용해 썼다. 그러나 요즘은 페미니즘 등의 영향으로 레이디 티라는 말을 쓰면 눈총을 받기에 십상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30대 여성 아마추어 골퍼는 “티 오프 하기 전에 ‘레드 티 쓰시죠?’라고 묻기보다는 ‘어떤 티 박스 쓰실 건가요?’라고 묻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골프는 남성의 스포츠였다. 골프의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에 있는 로열&에인션트 클럽하우스 안에는 2007년 여자 브리티시 오픈을 열기 직전까지 ‘여자와 개는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전통 있는 미국 동부의 남성 전용 프라이빗 코스 회원들은 “GOLF는 gentleman only, ladies forbidden(남성 전용, 여성 금지)의 약자”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골프는 더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여자 프로 선수들이 한국에서 배출되고 있다. 기자는 전 세계에서 여성 골퍼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일 거라 생각한다. 2019년 레저백서에 따르면 골프장 이용객 중 여성이 23.4%였다. 여성 골퍼는 약 110만 명 정도다. 골퍼 중 여성 비중은 일본 12%, 미국 24%라고 하는데 실제 골프장에 가보면 한국은 여성 골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평일 골프장에는 여성이 절반 가까이 된다. 최근 증가세는 더 빠르다. 2020년 상반기 여성 아이언 세트의 판매 성장률은 지난해 대비 7.8%였다. 남성용품 성장률보다 2배나 높다.  
 
그러나 여성들에 대한 골프장의 배려는 아직 부족하다. 오래된 골프장에는 여자 라커와 화장실은 물론 욕탕 공간도 부족하다. 지난해 여성 골프 행사를 수도권의 명문 A골프장에서 열었다가 라커룸이 부족해 난리가 났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성 라커에 보스턴백을 넣을 공간이 없어 로비에 가방을 늘어놨다고 한다.
  
호쾌한 샷을 하는 LPGA 스타 박성현은 많은 여성팬들을 골프장에 불러들였다. [중앙포토]

호쾌한 샷을 하는 LPGA 스타 박성현은 많은 여성팬들을 골프장에 불러들였다. [중앙포토]

#경남의 한 골프장에선 여러 홀에서 동시에 출발해 동시에 끝나는 샷건 행사를 했는데 여성 욕탕의 규모가 작아서 여성 골퍼들이 줄을 서서 20~30분씩 기다리는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돌아가 보자.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드 티는 다른 티잉 그라운드에 비해 허접하다. 페어웨이에 둥그렇게 잔디만 대충 깎아 놓고 빨간 티를 박아 어설프게 만든 곳이 더러 있다. 여성들은 홀대받는 느낌이 난다고 한다.
 
티박스 옆 카트 도로의 위치도 여성들에겐 매우 신경이 쓰인다. 카트 도로가 어드레스하는 여성 골퍼의 등 쪽에 있으면 불편하다. 지난해 타계한 코스 설계가 피트 다이는 “여성을 배려하는 골프장에는 카트 도로가 레드 티 앞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악은 티잉 그라운드가 포대 그린처럼 솟아 있는 데다 카트 도로가 뒤에 있는 경우다.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는 경우가 많다. 30대 여성 박 모 씨는 “남성 동반자들과 함께 골프장에 가면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가기가 정말 싫더라. 움츠러들어 제대로 샷 하기도 어렵다”고 푸념했다. 이런 골프장이라면 남성 골퍼들은 앞으로 나간다든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매너다.
 
한국의 여성 골프 웨어는 대부분 타이트하고 스커트는 짧다. 한국 여성은 필드에서도 패션 감각을 뽐낸다. 그러나 한 40대 여성 골퍼 김 모 씨는 “골프 의류 회사에서 이런 것밖에 팔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입는다”고 했다. 여성이 골프 코스에서 타이트한 옷을 입기 좋아해서인지, 이런 옷만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입는지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다. 그러나 획일적인 골프 코스 복식 문화를 불편해하는 여성 골퍼들도 적지 않으니 골프 의류 브랜드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클럽 스펙이 다양하지 않은 것도 불만이다. 40대 골퍼 이 모 씨는 “공을 멀리 치는 편이어서 여자 채가 맞는 게 없다. 남자 클럽을 쓰긴 하는데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 클럽은 종류도 많지 않은 편이다. 선택의 폭이 좁다. 중고 클럽 찾기도 어렵다. 다양해진 여성들의 요구를 맞추며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찾는 골프용품사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호준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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