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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직격인터뷰] "팬데믹에 이런 정책 하는 나라 어딨나" 병원장 3인의 한탄

중앙일보 2020.09.04 00:27 종합 26면 지면보기

아산·서울성모·고대 병원장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초유의 국가 재난 앞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의료진과 정부가 힘을 합쳐 코로나 방어에 전력을 다해도 어려울 텐데 의사 파업이 벌어졌고,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파업이 계속되면서 코로나 중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의사와 사전 협의 없어 사달났다
전공의, 학생 주장 정직하고 합리적
기피과목 공공의대로 해결 못해
수가지원, 지역병원 투자로 풀어야

중앙일보는 3일 이상도 서울아산병원장, 김용식 서울성모병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등 3명 의사들에게 현 사태 진단과 대안을 물었다. e메일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병원장들은 전공의 외침이 “정직하고 합리적이며,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환자와 미래 의료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공의대 신설, 의대 정원 확대 등의 정책은 “공공의료와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현재 상황과 사태 원인은
 
이상도 서울아산병원장

이상도 서울아산병원장

집단 휴진 2주째, 전공의·전임의가 떠난 병원 상황을 묻자 “지쳐간다. 장기화하면 병원 문을 닫든지 방법이 없다”(김영훈 원장) “입원·수술·외래 등 모든 진료 행위가 급감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상황”(김용식 원장)이라고 말했다.
 
급하지 않은 외래와 수술 등을 미뤄 간신히 버텨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고 입을 모았다. 김용식 원장은 “핵심 인력의 공백으로 교수 업무가 가중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지칠 대로 지친 의료기관에 진료 공백이 더해졌다”고 말했다. 이상도 원장은 “과별로 세밀한 운영계획을 세워 환자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운영하고 있다”면서도 “진료 공백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김영훈 원장은 “암 환자, 신생아 등의 수술은 미룰 수가 없는데 사실상 마비 상태”라며 “환자나 보호자의 불만이 나온다”고 전했다.
 
병원장들은 “그간 의료계가 지적해온 대로 정부가 정작 당사자와는 제대로 된 소통 없이 정책을 강행하려 한 게 사태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이상도 원장은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 수립 단계에서 발생했다. 의료계 의견이 충분히 반영됐다면 극단적인 대립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독자적으로 세운 정책은 합리적인 정책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영훈 원장도 “10, 15년 장기적으로 보면서 초석을 다져가야 할 정책이 있고, 의료계 얘기를 충분히 듣고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가야 할 정책이 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정교하지 못한 추진과 시기 등에 원인이 있다”며 “팬데믹 시기에 이런 정책을 내놓고 혼란을 일으키는 나라가 전 세계 어디에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선택이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김용식 원장은 “사회에 만연한 소통·타협·이해 부족의 연장선”이라며 “현장에서 체험하고 직시하지 않았다. 책상머리 정책과 포퓰리즘에 기반해 밀어붙였다. 의료계도 많은 단체가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와 타협의 폭을 좁혔다”고 말했다. 김영훈 원장은 “공공의대 설립은 항상 정치적 공약으로 등장해 왔다. 이렇게 해서 의료가 병들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았다. “힘들게 쌓아온 의료 시스템이 정치 논리나 잘못된 정책으로 일순간에 무너진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장 정직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소리”(김용식 원장) “이슈화된 정책이 의료를 나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기적이었다면 오히려 진작에 끝났을 텐데, 적당히 타협하고 모양새 갖춰 복귀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젊은 의사들”(이상도 원장) 등의 반응이 나왔다.
  
4대 의료 정책 평가하자면
 
김용식 서울성모병원장

김용식 서울성모병원장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지역 격차, 특정 과 기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두 개는 한방 첩약 건보 적용, 원격의료 도입이다.
 
이상도 원장은 “4대 정책의 요지는 ‘인력 증원’인데 단순히 의사 인력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 의료 환경이 개선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인력을 많이 투입하더라도 인프라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 간호사·의료기사 등의 인력과 최신 의료장비를 비롯한 발전된 병원시설 없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원장은 “지역 편차가 생긴 원인을 먼저 진단해야 하는데 현상을 해결하려는 방향이 틀렸다”며 “(지역 격차 등 문제는) 결국 부동산과 연관 있다. 도시 등 환경이 나은 곳에 밀집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일률적으로 숫자를 늘려 낙수효과를 기대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라고 했다.
 
김용식 원장도 “기피 과목 의사 절대 부족은 공공의대 신설이나 의사 수 증가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 원장은 “급조해 배출한 의사들이 지방에 터를 잡고 근무하거나 기피 과목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난 의사가 전공을 포기하고 서울 등 대도시로 몰릴 게 자명하다. 왜 서울에 살려고 하는지와 동일하게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공공의대에서 부실하게 교육받고 억지로 기피 과에 투입된 의사는 결국 환자 안전과 질을 크게 해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제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사 수나 지역별 치료 가능 환자 사망률 등의 통계를 반박하는 의견도 나왔다. 김영훈 원장은 “활동 중인 의사만 넣을 수도, 면허를 가진 의사를 전부 넣을 수도 있다. 나라별로 의사 수를 산출하는 방식이 다르다. 통계를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쏠림현상이 있어서다. 의사의 25~30%는 피부과·성형외과로 간다. 이런 왜곡 현상을 개선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비교한 뒤 의사 수를 늘리는 건 이류 의사만 잔뜩 키우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김영훈 원장은 코로나 이후 의료 과소비가 상당수 줄었고, 향후 인구 감소와 인공지능(AI) 발달 등으로 의료인력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단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식 원장은 사망률과 관련해 “서울도 지역과 교통, 의료기관과 의사의 실력 등에 따라 (사망률이) 천양지차일 것”이라며 “지방에 많은 응급센터가 들어서도 대부분의 환자는 또 서울로 올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풀까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결국 인프라 확충과 수가 개선 등을 근본적 처방으로 제시했다. 김용식 원장은 “대학병원에서 현재 아무리 대우를 좋게 해줘도 날이 갈수록 암·중증환자,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과의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며 “신세대 의사일수록 그렇다. 정책적 지원과 획기적인 보상정책, 끊임없는 보조인력 확충과 교육만이 기피 과목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모두 한국 의료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비가 싸고 쉽게 병원 가고 의료인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지 실제 의료수준이 최고라는 게 아니다. 낮은 의료수가와 대책 없는 의사인력 증가가 지속한다면 의료수준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도 원장은 “수가의 현실화를 비롯해 지역 병원이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젊은 의사들이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역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충분한 역량을 펼치도록 양질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대폭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훈 원장은 “보장성을 강화한 반면 저수가를 고집하고 있다. 수가 개선이 안 되면 결국 적은 노력으로 고비용을 창출할 수 있는 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전문의가 될 필요가 없다. 불필요하게 전문의를 많이 양성해 내는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좋은 여건에서 환자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공공의대를 얘기하는데 현재 있는 공공병원에 제대로 된 시설과 장비, 전문가가 있어야 하고, 여기서 보람되게 일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나 첩약 급여화 정책 추진과 관련해서도 제언했다. 김영훈 원장은 “한의학을 과학화해 경쟁력 있는 분야로 키울 필요가 있다”면서도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한방 치료를 보조적 치료요법으로 발전시켜보자는 데 동의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첩약이 (보험 대상에) 들어가니 오해가 생긴다. 특히 이 시기에 첩약을 급여화하겠다는 건 젊은 의사 보고 ‘파업하라’고 부추긴 꼴”이라고 말했다.
 
김용식 원장은 “첩약 급여화는 무조건 반대한다. 이 돈으로 중증 암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선 “개원의와 상생할 모델을 발전시켜서 감염병 위기 대응에 활용할뿐더러 미래의료의 축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김영훈 원장) “1차 의료기관으로 한정할 경우 찬성한다. 재외국민 등 해외환자 대상으로는 모든 의료기관에 허용하도록 해야 한다”(김용식 원장) 등의 의견이 나왔다.
 
이상도 원장은 “공공의대 등의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되 의료계·정부·국민이 참여해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서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훈 원장은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된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을 만들고, 정책 입안 전에 민주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거쳐 우리나라에 맞는 의료체계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리=황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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