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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큐의 경제학’에 이의 있다, 하버드 경제학과 이단아의 외침

중앙일보 2020.09.03 17:10
《공동체 경제학 The Dismal Science》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 출간되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이단아 스티븐 마글린 교수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다

봉쇄,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코로나 방역 활동에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이 타인과 공동체(community)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잊혀진 공동체의 가치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 어떤 시대 배경에서 탄생했고, 경제학 논리가 어떻게 공동체 파괴에 일조해 왔는지 명징하게 직조하고,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원저 출간과 국내 번역본 사이에 시차가 있지만, 인류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절실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시의적절한 출간이라 평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 스티븐 앨런 마글린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1938년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해 1959년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우등 졸업한 경제학자로,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1968년 하버드대 최연소 종신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계량경제학회 회원이자 세계경제학회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마글린 교수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1년 9월, 미국에서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가 벌어졌을 때다. 그해 11월 초에는 하버드 점령 시위(Occupy Harvard)의 일환으로 맨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듣던 하버드대 학생들이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하버드대 경제학과에서 이단아처럼 홀로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촉구해 온 스티븐 마글린 교수에게 ‘강의실 밖’ 강의를 요청했다. 스티븐 마글린 교수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2011년 12월 7일, ‘맨큐의 경제학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학(Heterodox Economics: Alternatives to Mankiw’s Ideology)’이라는 제목의 공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의 핵심 내용과 메시지가 이 책 《공동체 경제학》 에 자세히 실려 있다.
 
이 책의 부제는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가(How thinking like an economist undermines community)’다.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주류 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주류 경제학의 가정에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관한 가정, 경험보다 합리성을 우선하는 지식 이데올로기에 관한 가정, 한계가 없는 세계, 특히 무한한 욕구라는 가정, 국민 국가야말로 가장 정당한 공동체라는 가정이 있다.
 
주류 경제학의 가정은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여러 공동체가 설 자리를 없앤다. 이러한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공동체는 개인이 본인 목적과 이익에 부합할 때만 유지하는 단순한 모임 관계에 지나지 않게 되고,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멸종 위기 동물처럼 사라질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공동체 넘어 인간 존재의 멸종 위기 맞이한
생존의 시대를 읽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마글린 교수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과연, 경제 개발 과정에서 경제학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라고.
 
경제학은 처음에는 유럽, 이후에는 북미에서 발전한, 근대성이라는 맥락에서 진화한 학문이다. 마글린 교수는 경제학이야말로 서구 근대성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마글린은 서구 근대성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서구 근대성의 전제는 다른 이데올로기의 전제와 긴장 관계에 있다. 근대 서구와 다른 사회 구성체의 차이는 그런 긴장 관계 속에서 경제학의 가정을 수용한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주의, 합리성, 한계의 부재, 국민 국가 같은 경제학의 가정에만 토대를 둔 사회는 없다.
 
물론, 시장은 경제 성장을 촉진했고, 경제 성장으로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명 연장, 건강 증진, 고통 완화, 영양 상태 개선, 고된 육체노동 감소 등 경제 개발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마글린 교수는 그러나, 시장 논리에 기반을 둔 사회가 실패한 부분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공동체다. 국가가 공동체의 소멸에 책임이 크지만, 시장도 공동체 소멸에 책임이 있다는 것. 본디 시장은 공동체의 규율과 통제에 복종했지만, 시장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자체적 시스템으로 바뀐 뒤에는 국가에 합류하여 공동체 소멸의 원인이 된다.
 
경제학은 시장에 공동체를 파괴할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시장 논리를 기반으로 세상을 구축하는 일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사는 ‘선진국’은 국민 공동체(national community)를 제외한 공동체가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국민 공동체가 설 공간도 좁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공동체 경제학》 각 장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시장 경제와 경제학의 논리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2장은 공동체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3장은 근대성의 첨단을 달리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이 지닌 특징을 나열한다. 4장은 근대성의 근간을 이루는 개인주의를 경제적 측면에서 다룬다. 5장은 서구에서 근대성이 발전하게 된 시대 배경을 조망한다.
 
6장은 전근대 유럽에서 악덕이었던 이기심이 미덕으로 인식이 바뀌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7장은 인간이 지닌 지식의 한계인 불확실성에 대해 경제학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준다. 8장은 알고리즘 지식을 우선하고 경험 지식을 무시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9장은 알고리즘 지식에만 의존하는 경제학의 한계를 짚는다. 10장은 국민 국가, 국민, 국민주의, 후생 경제학을 주제로 논의한다.
 
11장은 경제 발전으로 평균 소득이 늘었어도 돈에 쪼들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와 경제학의 희소성 개념을 설명한다. 12장은 지구화(세계화)로 착취당하는 개발 도상국 노동자, 농민, 아동에 관한 관심을 촉구한다. 13장은 대항해 시대 이후 서구와 비서구가 접촉하면서 일어난 문화 충돌을 그린다.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국민에게 경제 개발의 목적은 자식들에게 여유롭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한 목적과 전망에 부합할까? 오늘날 청년 세대는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평을 받는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며 전 세계가 기후 위기로 몸살을 앓고, 전염병이 창궐한 지금, 우리는 미래의 풍요로운 삶은 고사하고 집단적 생존을 위협받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맨큐 교수로 상징되는 경제학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해 《공동체 경제학》은 위기를 기회로 삼을 새로운 대안의 길을 열어 보여줄 것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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