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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해고자 노조가입, 법 개정 앞서 대법원이 열었다

중앙일보 2020.09.03 16:46
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 대법원]

김명수 대법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 대법원]

해고자의 노조 가입이 사실상 허용됐다. 법 개정이 아니라 대법원에 의해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위법하다고 봤다. 고용부는 이날 "노조 아님 통보 처분을 취소하는 절차를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부는 2010년 3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해직 교원도 노조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한 노조 규약을 고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전교조가 이에 불응하자 그해 10월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빨간불에 건너면 보호하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우린 빨간불에 건넌다. 그래도 보호해줘야 한다'고 떼쓰는 식"이라고 반론을 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 제2항(법외노조 통보 조항)은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위헌적 조항으로 무효"라고 봤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용부는 이 시행령 조항이 유효하다는 전제로 법외노조 통보를 했는데, 시행령 조항이 무효이기 때문에 법외노조 통보는 법적 근거를 상실해 위법"이라고 말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연합뉴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연합뉴스

현행 노조법은 해고자가 노조에 가입하면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조 설립 상의 결격사유로 본다. 교원노조법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2015년 5월 28일 재판관 8대 1의 압도적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전교조가 제기한 위헌 심판에 대해서다. 따라서 전교조에 이 조항을 적용하면 노조로 인정받을 수 없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법률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비껴갔다. 대신 대법원이 주목한 건 법 집행을 위한 행정절차와 가이드라인 성격의 시행령이었다. 모법인 노조법에 '시행령에 그 절차를 위임한다'는 근거조항이 없고, 내용도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법을 건드리지 않고 시행령을 문제 삼아 전교조의 지위를 회복해준 것이다.
 
문제는 이번 판결을 둘러싼 혼란이다. 시행령이 부정된 상태에서 법의 허점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노조를 설립해 신고할 때는 노조법상의 결격사유 조항을 적용해 노조로 인정할 것인지, 노조 아님으로 볼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문제가 없다. 한데 노조에 설립신고증을 배부한 이후에는 결격사유가 생겨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법 준수를 위한 행정절차를 명시해 적용해 온 이유다. 이게 이번 판결로 부정됐다.
 
따라서 노조 설립 신고를 할 때만 해고자를 가입시키지 않고 법 규정에 맞춰 설립신고증을 받으면 그만이다. 행정기관으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고 나서 해고자를 노조에 가입시키면 행정기관이 손 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사실상 해고자의 노조 가입 문이 열린 셈이다.
 
전교조도 노조를 설립할 당시에는 해직 교원이 없었다. 설립신고증을 받은 뒤 규약을 바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 고용부가 이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가 패소했다. 같은 규약을 가졌던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도 다시 규약을 바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킬 수 있게 됐다. 전공노는 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8년 3월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하고 고용부로부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사실상 편법 노조 설립과 운영을 허용한 것으로 노조법이 무력화됐다"며 "법에 명시된 사안은 설립 전·후를 따지지 않고 일반적으로 적용해야 하는데, 이번 판결로 법의 보편성과 일반성이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있으면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은 간주조항이다. 따라서 결격사유가 있으면 행정기관이 이를 노조에 알리고 시정토록 하는 게 맞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기관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행정공백에 따른 민간 노사관계의 혼란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도 이런 혼란을 예상한 듯 "법외노조 통보 제도에 법률적 근거를 부여할 것인지 여부는 긍극적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가 대처하는 것이 옳다"며 입법적 후속 조치를 주문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에 힘을 보태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효과를 낼 전망이다. 현 정부는 노조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 낸 상태다. 국회에 제출된 노조법 개정안에는 실업자뿐 아니라 해고자의 노조가입과 활동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과 궤를 같이한다. 법 개정 전에 대법원이 먼저 정리한 모양새가 됐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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