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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 큰 칼 없었다···"초호화 황천길 그 신라인 170㎝ 여성"

중앙일보 2020.09.03 16:30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노출 모습.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 뒤꿈치까지의 길이는 176㎝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70㎝로 추정된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노출 모습.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 뒤꿈치까지의 길이는 176㎝로 피장자의 신장은 약 170㎝로 추정된다. [사진 문화재청]

 
황천길에 금동신발을 신었던 그는 신라의 꺽다리 귀족여성이었을까.

6세기 초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발굴
청동다리미 등 여성 고분 유물들 쏟아져
"금동관~금동신발 착장 키 170㎝ 추정"

 
6세기 전반에 제작된 금동관 등 장신구 일체가 출토된 경주 황남동 120-2호분과 관련, 3일 이 무덤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추정한다는 조사단 측 발표가 나왔다.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온라인 발굴현장 설명회에서 “남성의 고분에서 빠짐없이 출토되는 큰 칼(대도)이 나오지 않았고 굵은고리 귀걸이, 청동다리미, 방추차(가락바퀴) 등이 출토된 데서 미뤄볼 때 황남동 120-2호분의 피장자는 여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라 고분에서 굵은고리 귀걸이는 여성용, 가는고리 귀걸이는 남성용으로 구분돼 출토됐던 데다 주로 여성 고분에서 나왔던 부장품인 청동다리미와 방직기구인 방추차가 이번 120-2호분에서 나왔다고 하면서다. 장신구를 전공한 이한상 대전대 교수 역시 “굵은고리 귀걸이 외에도 허리춤에서 작은 장식칼의 흔적들이 확인되는 등 무덤 주인공은 여성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발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장신구 착장 상태로 볼 때 피장자의 키가 170㎝ 내외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조사단에 따르면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 뒤꿈치까지의 길이는 176㎝. 신장 170㎝도 보수적으로 잡은 편이란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의 이현태 연구사는 “인골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 한 성별‧신장을 확언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고고학적 판단으로는 장신의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신라인의 평균 키를 알 순 없지만 당시 이례적인 케이스였을 거로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등 전신 모습.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등 전신 모습. [사진 문화재청]

이번 발굴조사에서 인골은 부식돼 수습할 수 없었다. 다만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를 착장한 상태로 묻힌 덕에 신장 추정이 가능했다. 머리에 금동관을 쓰고 금귀걸이와 구슬을 엮어 만든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를 하고 금동신발을 신은 최고위층 모습이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이처럼 관과 귀걸이, 반지, 신발 등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신발 일부 노출 상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금동신발을 신은 상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신발 일부 노출 상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금동신발을 신은 상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문화재청]

 
앞서 경남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여러 순장인골이 출토됐을 때 그 중 완전한 상태로 남은 순장인골을 분석한 결과 키 153㎝의 16세 소녀로 추정된 바 있다. 이들 고분이 발견된 곳은 가야의 한 나라인 ‘비화가야’로 알려졌으며 황남동 고분보다 약간 이른 시기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황남동 120-2호분에 앞으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인골 흔적을 탐색하는 한편, 신분·성별 등 피장자의 정보를 계속 조사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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