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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일 밤거리 떴다, 코로나가 소환한 칠레 '배트맨' 정체

중앙일보 2020.09.03 16:10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배트맨'이 노숙인과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배트맨'이 노숙인과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고독한 영웅’.

만화와 영화로 잘 알려진 배트맨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배트맨이 최근 고담 시가 아닌 남미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밤거리에 나타났습니다. 영어 대신 스페인어를 쓴다는 점 외에 외형상 크게 다른 건 없어 보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연대의 배트맨'(Batman solidario)이라고 부릅니다.
#배트맨은 칠레에 왜 나타났을까요. 영상으로 정체를 확인해보세요.

[영상] 칠레 밤거리에 온 '슈퍼히어로'
"다함께 연대하면 세상 훨씬 좋아질 것"

 
CNN 등에 따르면 이 배트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칠레는 다른 남미 국가들처럼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누적 환자 수는 40만명을 훌쩍 넘겼고, 사망자도 1만명 이상입니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저소득층의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도 줄었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이던 3개월 전, 한 남성이 배트맨 옷을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팬더믹(대유행)과 사회적 상황은 무섭게 악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직접 뛰어 들어 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배트맨으로 변신한 그는 자신의 돈을 털어 음식을 직접 준비했습니다. 위생과 방역도 놓치지 않습니다. 마스크를 쓴 채 앞치마를 입고 커다란 솥에다 정성껏 요리하죠. 하루에 대략 100인분입니다.
 
배트맨은 대개 혼자 움직이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칠레의 배트맨은 '연대'를 보다 강조합니다. 일주일에 6번, 거의 매일 밤거리를 배회하는 그는 노숙인과 빈민들을 찾아갑니다. 
 
'배트카' 대신 SUV 차량을 직접 운전합니다. 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손수 만든 음식을 건네줍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쁨과 음식, 미소를 주기 위해 (배트맨으로) 위장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도심에 어둠이 깔리면 배트맨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늘어만 갑니다.
요리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앞치마를 입고 있는 칠레의 '배트맨'. 로이터=연합뉴스

요리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앞치마를 입고 있는 칠레의 '배트맨'. 로이터=연합뉴스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직접 계정을 만들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합니다. 노숙인을 위한 담요를 모으겠다며 '번개' 공지를 올리죠. 
 
이런 그의 선행이 쌓이면서 국내ㆍ외 언론에 보도되는 일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배트맨은 정확한 이름·직업 등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상인이라고만 어렴풋이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아직 그는 배가 고픕니다. "사람들이 주변에 커다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음을 깨닫도록 할 겁니다. 우리 모두가 그 감정에 동참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칠레의 배트맨은 내일도 자신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밤거리를 헤맬 겁니다. 이미 단순한 '기행'이나 '이벤트'가 아닌 진정한 영웅이 됐습니다. 어마어마한 부나 남다른 힘을 가지진 못 했어도 어려운 이를 위한 마음을 몸소 실천했으니까요. 코로나로 힘든 일상을 보내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곱씹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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