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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억 '셀프대출'한 대출 직원, 그가 노린 기업은행의 허점

중앙일보 2020.09.03 06:00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차장급 직원이 가족 앞으로 76억원어치 대출을 실행해 부동산 29채를 사들였다가 면직 처분된 사실이 지난 1일 알려졌다. 어떻게 이 대출이 가능했는지, 해당 직원이 벌어들인 수익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등 남은 의혹을 살펴봤다.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뉴스1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뉴스1

기업은행 A차장은 2016년 3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사실상 자기 앞으로 29건, 75억7000만원어치 부동산 담보대출을 집행했다. A차장은 경기도 내 한 지점에서 근무하던 때부터 자신의 아내·모친 등 가족이 대표이사로 있는 법인기업 5개와 개인사업자 명의를 활용해 대출을 받았다. 담보물은 주로 경기도 화성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오피스텔·연립주택 등 주거용 부동산이었다. 그가 이 대담한 대출로 벌어들인 평가차익은 50억~60억원으로 추정된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31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A차장을 면직 처분했다.

 

①이런 사고, 어떻게 가능했나?

보도가 나가자 애당초 이런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컸다. 여기엔 A차장의 치밀함과 기업은행 시스템의 허술함이 동시에 작용했다. 
 
A차장은 기업은행 내에서 대출(여신)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그는 과거 본점 여신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 기업은행 직원은 A차장에 대해 "본점 근무 당시 기업은행 직원들을 위한 개인여신 업무 관련 가이드라인 작성 작업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라고 전했다. 그는 누구보다 기업은행 대출 시스템을 잘 아는 직원이었다.

 
지난 3월 기업은행 창구를 찾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정용환 기자

지난 3월 기업은행 창구를 찾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정용환 기자

그가 꿰고 있던 기업은행 시스템은 다른 은행에 비해 허술했다. 다른 시중은행은 내부 규정상 직원 가족이나 친인척 관련 대출을 직접 취급하는 경우, 본부 시스템에서 해당 시도를 원천 차단한다. 기업은행은 직원 가족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가 유명무실했다. A차장이 모친과 아내 등 가족 명의의 법인기업, 임대사업자를 활용해 은행 대출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업은행은 뒤늦게 내부자 거래 관련 시스템 정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A차장은 가족에 대출금리도 낮게 적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기업은행의 안일한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업점에서 대출 업무를 취급하는 한 기업은행 직원은 "A차장이 가족법인 등에 대출을 많이 내준 게 작년과 재작년인데 그 당시 기업은행엔 부동산 임대업자를 신규로 섭외하는 경우, 영업점 직원이 해줄 수 있는 만큼 금리 감면을 다 해줘도 이를 차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KPI(핵심성과지표) 기준이 있었다"며 "A차장으로선 가족 명의 법인에 낮은 금리를 적용할 유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②50억원 넘는 수익금, 회수할 수 있나?

A차장이 가족 명의를 활용해 기업은행으로부터 받아낸 대출금 합계는 75억7000만원이다. 그가 사들인 부동산의 평가차익은 50억~60억원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이 대출금뿐 아니라 수익금까지 회수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화성 동탄 메가폴리스 주변 전경. 중앙포토

화성 동탄 메가폴리스 주변 전경.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A차장의 '셀프대출'이 불법은 아닌 편법에 가까워서다. 그는 허술한 대출 규정을 활용해 지점장 승인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대출을 집행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봤을 때 A차장이 은행 절차를 준수해 하자 없이 대출을 실행했다면 이를 문제 삼긴 어려울 것"이라며 "부당이익을 반환받으려고 해도 그가 대출을 받은 것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기업은행이 A차장을 형사고발한다면 그가 거둬들인 수익금을 국고로 환수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 김정철 법무법인우리 대표변호사는 "은행 내부 규칙이나 기준에 따라 원래 대출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원이 임무를 위배해 대출을 실행했다면 이는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해 그 수익금이 국고에 귀속될 수 있다"며 "직원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대출을 실행하면서 이를 회사에 알리지 않아 회사를 상대로 착오 또는 부지(不知)를 일으켰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따른 형사적 죄책이 성립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현재 A차장에 대한 대출금·수익금 회수, 형사고발 등 후속 조치를 검토 중이다.

 

③비슷한 사고, 과거에도 있었나?

은행권 일부에는 이번 A차장의 사례를 두고 "가끔씩 발생하는 개인 일탈"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과거 국민은행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적 있다. 국민은행 홈페이지에 2015년 7월 17일 공시된 '금융사고 발생' 자료에 따르면 이 은행 모 지점 직원들은 그해 1월 지점장의 배우자가 대표이사인 법인에 대한 태양광발전소 시설자금대출을 취급하면서 관련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대출금 19억원을 부당 지급했다. 국민은행은 이 사건을 업무상 배임으로 규정하고 해당 지점장을 면직 처분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당시 이 사고를 계기로 국민은행은 직원 가족에 대한 대출을 취급할 땐 상시시스템의 모니터링을 거쳐 본부 심사 때도 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등 시스템 개선 조치를 취했다"며 "기업은행은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사고를 방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기업은행은 직원 가족에 대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 윤두현 국민의힘(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국책은행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규정의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은행들의 내부통제기준 상태와 내부절차 준수 상황을 철저히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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