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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바보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중앙일보 2020.09.03 00:3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 정부의 강호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뜨뜻미지근’했다. 취임 초 분양 시장이 너무 달궈져 ‘분양 천국, 입주 지옥’ 소리가 나올 때다. 사방에서 과잉 공급을 당장 규제하라고 난리가 났다. 강 장관은 그러나 “주택 시장은 골디락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야 한다”고 했다. 센 대책을 내놓거나 여론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규제는 효과가 없고 큰 규제는 시장을 얼게 한다”며 버텼다. 몇 년 뒤 정권이 바뀌더니 시장은 거꾸로 갔다.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이 고질화했다. 그가 과잉 대응하지 않은 건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 됐다.
 

비정상적 정책에서 살아남으려면
주무장관 말도 가려 가며 들어야
“30대 영끌 안타깝다” 곱씹을 만

정반대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다. 그는 3년 내내 ‘화끈’했다. 과잉 규제로 시장을 겁박하고 몰아붙였다. 실세 장관이라 더 주목받기도 했겠지만, 워낙 말이 세니 하는 말마다 화제가 됐다. 결과는 대부분 ‘헛발질’이었다. 취임 직후부터 투기와 전쟁한다며 “살 집 아니면 파시라”고 했지만 그 말을 믿고 따른 이들만 쪽박을 찼다. “6월까지만 시간을 드리겠다” “강남이 좋습니까” “서울 집값 11% 올랐다”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며 엄포와 비아냥, 입맛대로 통계를 들이댔지만 시장은 김 장관의 말과 정반대로 갔다. 급기야 “장관 말과 반대로 하면 성공한다”는 학습효과까지 생겼다.
 
그 김현미 장관이 지난주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해 집을 샀다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3기 신도시 분양을 노리라”고도 했다. ‘집값이 내릴 텐데 왜 지금 비싸게 사느냐’는 의미일 것이다. 당장 3040 사이엔 ‘악어의 눈물’ ‘물정 모르는 소리’란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당첨 최저 가점이 평균 60.6인데 30대는 무주택 기간 등이 짧아 아무리 노력해도 57점을 넘기 힘들다. 뭘 모르고 한 소리란 것이다.
 
김 장관의 “분양을 노리라”는 뒷말은 평소처럼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러나 “영끌할 때인가”는 앞말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7·10 대책은 극약 처방이다. 정상적인 정부의 정상적인 대책이 아니다. 시장을 아예 초토화하겠다는 의도다. 벌써 조짐이 보인다. 세무사 A는 “7·10 대책 후 다주택자 상담이 쏟아진다. 대부분 매도 상담이다. 주말도 없이 바쁘다. 양도세 중과를 도입했던 2017년 8·2 대책 때도 문의가 꽤 있었지만, 그때와는 고민 수준이 다르다. 더 진지하고 더 급하다”고 했다.
 
영원히 오르는 주식은 없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세금 폭탄이 겹치면 거래 절벽이 올 수 있다. 세무사 B는 “다주택자가 집을 살 이유가 전혀 없다. 지금 사서 3년 뒤 10억원이 오른다고 치자. 팔아 봤자 세금(양도세 72%+취득세 12%+보유세 최소 6.6%=90% 이상)과 중개 수수료 등 경비를 제하면 되레 마이너스다.” 그는 “집값이 내리막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돈은 돈 되는 곳만 좇는다. 수익이 안 나는데 수요가 몰릴 리 없다. 물론 집값이 떨어지는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보유세가 본격 오르는 건 내년부터다. 초저금리로 금융 비용도 크지 않다. 다주택자들은 어떻게든 버틸 것이다. 내년 서울시장, 내후년 대통령 선거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180석 범여권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현재의 극약 처방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이 생각 저 눈치 보던 시장이 한번 하락에 베팅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집값 급락 열차가 출발할 수 있다. 1차는 양도세 중과가 시작되는 내년 6월, 2차는 보유세가 피부에 와닿는 내년 말, 3차는 대선이 끝나는 2022년 5월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영끌은커녕 안전벨트를 단단히 맬 때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 아무리 천하의 김현미 장관 말이라지만 다 틀릴 리 없다. 옛말(사마천 『사기』)에도 있지 않은가. 우자(愚者)라도 천려(千慮)면 필유일득(必有一得)이라-어리석은 사람 말이라도 천 개 중 하나는 맞는 게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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