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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넘으면 또…편견과 싸워온 정정용 감독

중앙일보 2020.09.03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정정용(오른쪽) 서울 이랜드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 출신은 프로 무대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편견을 깼다. 스타 선수 없는 약팀 이랜드를 맡아 올 시즌 PO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정정용(오른쪽) 서울 이랜드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 출신은 프로 무대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편견을 깼다. 스타 선수 없는 약팀 이랜드를 맡아 올 시즌 PO에 도전한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한 축구 세미나. 그곳에서 만난 정정용(51) 프로축구 서울 이랜드 감독이 이런 말을 했었다. “내 인생은 그랬다. 팀을 맡을 때마다 ‘경험도 없는데 이 친구로 되겠어’란 말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유소년만 맡다가 프로에서 통하겠어’라고 하더라. 잘 준비해 결과를 만들겠다”고. 

K리그2 서울 이랜드 변화 이끌어
지난해 5승 최하위팀 올해는 7승
손에 책,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
제자들 뿌듯해 지금은 PO 생각뿐

그가 K리그2(2부) 서울 이랜드 사령탑에 부임한 직후였다. 지난해 6월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으로 처음 프로 지휘봉을 잡게 됐다. 이랜드는 2018년부터 2년 연속 꼴찌팀이다.
 
부임 8개월. 이랜드는 올 시즌 7승4무6패로, 벌써 지난해 승수(5승)를 넘어섰다. 3위까지 올랐고, 현재는 5위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4위 경남FC와 동률(승점)이다. 이랜드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없다. 선수단 평균연령은 23.8세다. 이상민·최재훈·문정인·김태현·고재현 등 정 감독이 연령별 대표팀에서 지도했던 제자들이 주축이다.
 
이랜드는 지난달 30일 안산 그리너스를 1-0으로 꺾었다. 후반 43분 교체 투입한 김수안의 슈팅이 발단돼 최재훈의 결승골로 이어졌다. 2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정 감독은 “수안이는 14세 대표팀 상비군에서 데리고 있었다. 장신 공격수로 한 방이 있는 비밀병기”라며 웃었다.
 
정 감독은 “축구협회 기술연구그룹(TSG) 멤버로, 각국을 다니며 세계축구 트렌드를 봤다. 유럽에서는 스리백에 공수전환이 빠른 팀이 성적을 낸다. 멤버 구성에 차이가 있지만 접목하려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 감독은 당장 눈앞의 월드컵에 못 나갈 수도 있어 부담감이 심하다. 프로팀은 쭉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가 스트레스가 덜하단 말인가” 되묻자, 그는 앞머리를 넘겨 무성해진 흰머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프런트 출신 김은영 이랜드 사무국장은 “김성근 전 SK 감독과 정 감독의 공통점은 그 종목에 미쳐서 몰입한다 점”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요즘 일본의 고 노무라 가쓰야 야구감독을 다룬 책 『이기는 법』을 읽는다. 노무라는 통산 성적이 5할에 불과했지만, 약팀을 강팀으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했다. 정 감독은 ‘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지식을 전하거나 권위를 내세우기에 앞서 ‘내가 널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줘라. 감독이 믿어주면 선수는 뼈가 부서지도록 달린다’는 책의 대목을 보여줬다. 이랜드 선수들은 정 감독을 “쌤(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자율 속에 규율이 있다.
 
U-20 월드컵 당시 제자였던 오세훈(상주), 엄원상(광주)은 K리그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소속팀 내 주전 경쟁에서 고생하던 이강인(발렌시아)은 최근 주장 완장을 찼다. 정 감독은 “제자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 월드컵이라는 큰 경험이 도움됐을 것이다. 강인이는 근육도 많이 붙었더라”라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 시절부터 늘 편견에 맞서 싸웠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지내며 느낀 건 ‘욕심낸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다. 3년간 아이들을 키웠는데, 정작 U-17 월드컵에 다른 감독이 나갔다. 그때 내려놓는 걸 배웠다. U-20 월드컵 때도 아시아 예선을 통과만 생각했다. 지금도 플레이오프 진출만 생각한다”고 초탈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편견과 싸웠을까.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제 다시 도전하러 가야 한다”며 화상 미팅을 위해 인터뷰를 끝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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