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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행복한 할망구" 해발 5000m서 84세 생일맞은 오지탐험가

중앙일보 2020.09.02 08:30
다큐멘터리 '카일라스 가는 길'의 감독 정형민(왼쪽) 씨와 다큐의 주인공인 어머니 이춘숙 씨가 8월 31일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에서 활짝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큐멘터리 '카일라스 가는 길'의 감독 정형민(왼쪽) 씨와 다큐의 주인공인 어머니 이춘숙 씨가 8월 31일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에서 활짝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4년 히말라야 갈 땐 여든살 어머니가 처음 한국을 벗어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긴 게 기뻤어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른 나이에 먼저 간 아버지와 형님에 대한 아픔을 씻고 웃으며 가시길 바랐어요. 집에만 계시면 그런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떠나시지 않을까. 앞뒤 생각 않고 여행길에 올랐죠.”

 
6년 전 노모 이춘숙(86)씨와 히말라야 순례 여정에 올랐던 다큐멘터리 감독 정형민(51)씨의 말이다. 어머니 이씨는 첫아들을 1년도 안 돼 잃고 결혼 7년째이던 1970년 남편마저 갑자기 떠나보냈다. 아직 어렸던 남매를 홀로 길러낸지 40여년. 문득 막내아들 정 감독이 먼저 다녀온 히말라야 까그베니 마을의 600년 된 불교 사찰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간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그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우리 이제 어디에 가니?”

3일 개봉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
80대 노모와 감독 아들 오지 순례
"세상 위해 한 것 없이 할머니 돼,
부끄러워져서 아들과 길 떠났죠"

 
정 감독이 다큐 ‘무스탕 가는 길’(2017)에 먼저 담은 이 첫 여행 이후 모자의 오지 순례는 2017년 티베트 성지 카일라스 산으로 이어졌다. 3일 개봉하는 그의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은 어머니와 그간의 여정을 담은 작품. 2017년 초 바이칼 호수에 다녀온 뒤 그해 9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시작해 고비 사막, 파미르 고원, 티베트 성산 카일라스, 히말라야, 네팔 카트만두까지, 3개월간 거쳐 간 길이 2만㎞에 이른다.  
 

여든 넘어 2만km 오지 순례 도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카메라 든 아들 정형민 감독과 오지 순례길을 떠난 노모 이춘숙씨다. 사진 속 장소는 오랜 세월 유목민의 고향으로 불린 알타이 산맥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카메라 든 아들 정형민 감독과 오지 순례길을 떠난 노모 이춘숙씨다. 사진 속 장소는 오랜 세월 유목민의 고향으로 불린 알타이 산맥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여든 넘어 오지 탐험가가 된 이춘숙씨는 여든네 번째 생일도 평균 해발 고도 5000m 파미르 고원에서 맞았다. 일기장엔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망구”라 썼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골짜기 골짜기에서 왔습니더. 올해 팔십하고도 너이입니더. 그래도 청춘! 입니더!” 그의 맑고 유쾌한 기운이 89분 다큐 내내 흘러넘친다. 유튜브 1세대 박막례 할머니, 백발 모델 김칠두,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등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 스타들의 궤를 잇는다.  

 
지난달 31일 서울을 찾은 그와 정 감독을 인사동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렇게 영화화 될 기라고 생각했으면 주연배우처럼 옷도 좀 폼을 내고 그리 했을 텐데요(웃음). 주연배우 시원찮아도 정 감독이 훌륭하게 잘했습니다.”
 
평생 자식들 위해 사느라 호강이라곤 몰랐던 이씨는 그전엔 아들의 여행 권유도 수차례 물리쳤다. 그러다 TV 다큐에서 오지 사람들을 보며 뭉클해졌단다. 어느새 할머니가 되고 보니 세상을 위해 한 일이 없다 싶어 부끄러워졌고, 히말라야 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궁금해졌다는 설명이다.
 

"팔십너이, 그래도 청춘입니더!"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이춘숙씨가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이춘숙씨가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80대 노모와 오지에 간다니 주변에선 다 만류했지만 정 감독은 어머니 체력을 믿었단다. “당시만 해도 산에서 쓰러진 나무를 끌고 와서 도끼질을 하셨거든요. 2014년 히말라야부터 해발 5000m 넘는 티베트 고지까지 4년 여정이 고산 적응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괜찮으실 거라 믿었고 실제 괜찮으셨죠.”
 
“엄마 괜찮나~.” “그래~.” “안 춥습니꺼~.” “안 춥습니더~.” 카메라 뒤 아들과 경상도 억양으로 노래하듯 주고받던 그는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도 오래 정든 사이인 듯 다정했다. 현지 동네 아이들이 그의 말을 따라 하면서 즉석 한국말 교실도 열렸다. 통역 없이 어찌 그리 잘 통하냐고 묻자 이씨는 “거기 사람들은 몬 살아도 눈빛이 살아있다”고 했다. 정 감독이 “어머니가 노력하셨다기보다 거기 분들이 선하고 활달해서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아줬다는 이야기”라고 부연했다.   
 

30대에 남편 잃고 자식 키우랴 꿈 포기 

껍질 다 갈라진 고목, 돌산 오르는 산양, 노란 들꽃 등 보는 것마다 귀하게 여기고 길 가다 마주친 가난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는 백발 노모 손엔 염주와 함께 세상을 위한 기도가 늘 따랐다. “저쪽 나라 밥 굶지 않고 세 끼 먹을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천지 모든 인간, 슬픔에서 헤매는 모든 인간, 즐겁게 좀 해주십시오. 부처님” 그 자신도 겪었기에 헤아린 아픔들이었다.  
 
“자라면서 본 홀어머니는 분식집에서 고등학생 형들한테 라면 팔며 고생하시던 모습이었어요. 어머니가 젊을 적 유망한 공무원이었단 걸 철들고야 알았어요. 경남, 창원, 진주 일대에서 서부 경남 이춘숙 여사 모르면 간첩이었다더군요.” 정 감독의 말이다.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이춘숙씨가 바이칼에서 얼어붙은 빙판을 걸으며 카메라 든 아들 정형민 감독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이춘숙씨가 바이칼에서 얼어붙은 빙판을 걸으며 카메라 든 아들 정형민 감독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대학 나와 공무원 된 '농촌지상주의' 신여성 

1934년 이춘숙씨는 교육열 높은 7남매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내가 잘사는 것보다 국민이 잘살아야 한다”는 어머니 가르침을 받으며 당시 여성으론 드물게 진주여고, 수도여자사범대학까지 나왔다. 1956년 스물두 살에 12대 1 경쟁을 뚫고 경남 진양군 농사교도소(지금의 농업기술센터) 초대 여성 공무원이 됐다.  
 
“야(정 감독) 낳기 전엔 저는 농촌지상주의였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문맹퇴치한다고 방학 때 부락 가서 한글 가르쳤죠, 우리 농촌이 부강해야 대한민국이 잘 산다 믿고 살았죠.”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말미에 삽입된 흑백사진. 20대 이춘숙씨가 농사교도소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말미에 삽입된 흑백사진. 20대 이춘숙씨가 농사교도소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그러다 서른에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서울서 한국은행을 다니다 고향 남해가 그리워 돌아온 남자였다. 그의 고지식함까지 사랑했다고 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도 10여년, 40대 중반까지 하던 공직생활을 그만둔 건 막내아들 때문이었다. “서울 외할머니 댁에 저를 맡기고 한달에 한번 보러오셨는데 헤어질 때마다 제가 붙잡고 울자 결국 사표를 던지셨어요. 안 해본 일 없이 저희를 키우셨죠. 그 꿈을 버린 걸 요즘은 후회도 하세요. 공직 계속했다면 너(정 감독)를 더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 주인공 이춘숙씨가 젊을 적 남편 고 정성두씨와 결혼식 날 기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 주인공 이춘숙씨가 젊을 적 남편 고 정성두씨와 결혼식 날 기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막바지, 얼어붙은 카일라스 산비탈을 오르다 지쳐 쓰러졌던 이씨는 지난 세월을 이렇게 되새기며 다시 일어섰다. “서른일곱에 혼자 돼서 아무런 고통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여기 못 올라가면 안 됩니다. 부처님, 도와주시옵소서.”
 

경북 봉화 촌집서 농사 짓는 "열정 할망구죠" 

요즘 그는 2008년 경북 봉화로 귀촌하며 아들이 손수 지은 집에서 알뜰살뜰 농사짓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한 달 전부터 건강이 별로 안 좋아서 즐겨 보던 책도 끊고 다섯 시 일어나 명상하고 거닐며 소나무, 꽃과 이야기하는 “열정적인 할망구”라면서다.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정형민 감독과 이춘숙씨가 티베트 성지 카일라스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 정형민 감독과 이춘숙씨가 티베트 성지 카일라스에서 찍은 기념 사진이다. [사진 영화사 진진]

 
“단호박을 100포기 이상 심었는데 하룻밤 새 산돼지가 절반 가까이 묵어 삐서 분해서 울었거든요, 근데 집에 온 아들이 위로해줄 줄 알았더니 한다는 첫마디가 멧돼지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느냐기에 고마 분해서….”  
 
“엄마 편 아닌 멧돼지 편 든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이씨는 “너는 한 끼 굶어도 힘든 사람들 도우라”는 가르침대로 자라준 아들이 자랑스러운 눈치였다.
 
“태몽에 지구본 둘러멘 아이가 나왔다”는 그는 아들이 “정약용 할아버지 후예다운 인류학자, 이 나라에 필요한 박사가 되길 꿈꿨는데” 생각지도 못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 뜻대로 경북대를 거쳐 캐나다 맥마스터대 문화인류학 유학까지 떠났던 정 감독은 박사과정 중 일어난 9.11 테러와 아프간 난민들을 지켜보며 학문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귀국 후 방송 다큐 번역을 하다 2011년 처음 간 히말라야에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시간강사를 하며 어머니가 바라시던 문화인류학자 길도 가고 있죠. 알래스카 북미 선주민 다큐도 국내 방송 다큐 최초로 찍게 되었어요. 세상 오지의 삶과 문화 이야기를 다큐로 계속 선보이고 싶어요.”
 

다음 목적지는 북인도 보드가야 빈민촌

지난달 31일 아들 정형민(오른쪽) 감독과 어머니 이춘숙 씨. 북인도 보드가야에 가는 것이 다음 소원이라는 이씨는 "지금은 코로나 걱정이 대단하다. 나도 봉화 집에서 오늘 처음 나왔다"면서 "65세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밖에 안 나가고 집에 계셔서 국가에 이바지하길, 세계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31일 아들 정형민(오른쪽) 감독과 어머니 이춘숙 씨. 북인도 보드가야에 가는 것이 다음 소원이라는 이씨는 "지금은 코로나 걱정이 대단하다. 나도 봉화 집에서 오늘 처음 나왔다"면서 "65세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밖에 안 나가고 집에 계셔서 국가에 이바지하길, 세계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런 아들과 함께할 어머니의 다음 소원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북인도 보드가야에 가서 빈민들에게 쌀과 담요를 나눠주는 것. 이를 위해 노령연금을 매달 20만~30만원씩 빠짐없이 모으고 있다.  
 
“진작에 50대에 (오지에) 갔으면 지금 정도엔 수도관을 몇 동네라도 놔줬을 텐데. 남은 여생 90꺼정 가난한 나라 다만 한 군데라도 가서 수도를 놔주고 싶어요. 그곳 아이들이 물이라도 좋은 물 먹도록요. 내가 가더라도 정 감독한테 하늘이 복을 내려서 엄마가 하려던 수도를 한 마을, 한 마을 놔주는 게 평생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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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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