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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늘 저녁 기도 명단에서 아들은 꼴찌다

중앙일보 2020.09.02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56) 

딸 부대가 다녀간 뒤 어질러진 장난감이랑 놓고 간 물건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다 보니 한쪽엔 딸의 휴대폰도 있다. 애를 잊지 않고 챙겨가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줘야 하는 딸의 일상이다. 중년의 비밀 금고인데 ‘어라’, 잠금장치도 안 되어있어 잠시 훔쳐본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남매가 대화한 내용이다. 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딸이 두고간 휴대폰을 잠시 훔쳐보았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남매가 대화한 내용을 보다가 한참을 웃었다.[사진 pxhere]

딸이 두고간 휴대폰을 잠시 훔쳐보았다. 집을 나가기 전까지 남매가 대화한 내용을 보다가 한참을 웃었다.[사진 pxhere]

 
세계가 다 코로나 사태로 힘든 상황이니 기운 내고 힘내라는 격려 대화다. 이런저런 아이들 크는 이야기 등 통상적인 대화 끝에 안녕을 고하며 딸이 말한다. “엄마도 나도 늘 너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거 알지?” 그런데 아들 답이 웃음을 주며 밉살스럽다. “엄마랑 누나랑은 가끔 하겠지만, 장모님은 날마다 기도하셔. 행복이 누적상태야. 하하.”
 
‘흐미, 이 녀석이 잘 나가다가 장모님이 왜 거기서 나와~’ 요즘 유행하는 노랫가락이 생각나 혼자서 흥얼거리며 웃는다.
 
‘아들을 키워 장가보내면 처가 자식’이란 말이 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더니, 어찌 그리 내 남편과 똑같은지 우습다. 부인이 사랑스러우면 처가 말뚝에도 절한다는 속담처럼 ‘장모님은’, ‘장모님이’ 하며 말끝마다 노래하던 팔불출 같은 아들의 모습이 시어머니는 얼마나 밉살스러웠을까.
 
사돈의 사위 사랑은 애틋하고 깊다. 저번에 아들네 집을 방문하면서 알아봤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멀리 있는 딸 걱정뿐인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러니 그 딸과 함께 사는 사위에게 늘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사랑의 마음을 전달받은 아들은 날마다 부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장모 모습을 지켜본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안 봐도 눈에 선하다는 말이 그 말인가 보다.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남편과 나의 손을 맞잡고 유언같이 말씀하셨다. “임 서방이 있으니까 넌 걱정 안 하마. 지금처럼 잘 살아라.”
 
 
남편이랑 나의 대화는 5분이면 끝이 났다. 둘 다 가방끈이 짧다는 말처럼 배움이 부족했다. 거기에 삶도 퍽퍽했다. 우리의 대화는 죽고 못 사는 잉꼬부부로 시작해 불협화음이 장작불 되어 투덕대다가 화산 터지듯 폭발이 일어난 후 재가 되어 끝이 나곤 했다. 불같은 성격에 가난한 임 서방이 당신 딸과 정말 잘 살아줘서 그리 말씀하셨을까. 내가 부모 되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변한 건 친정 부모 덕분인 것 같다. 내가 투덜대며 고자질하면 늘 남편 편을 들어 주었다. 남자는 성격이 조금은 그래야 남자답다며 응원해주고, 열심히 잘살아줘서 고맙다 치켜세우며 작은 일 처리에도 자랑스럽다 늘 격려해주었다.
 
동반자 되어 함께 걸어가는 자식 부부를 바라보며, 바람 잘 날 없이 끊길 듯 부서질 듯 이어지는 나날과 함께 종착지까지 친구 되어 잘 가길 응원한다. [사진 pixabay]

동반자 되어 함께 걸어가는 자식 부부를 바라보며, 바람 잘 날 없이 끊길 듯 부서질 듯 이어지는 나날과 함께 종착지까지 친구 되어 잘 가길 응원한다. [사진 pixabay]

 
아들도 대화법이 그랬다. 신혼 초엔 몇 번이나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곤 했다. 요즘은 아예 그 욱하는 성격은 어디로 보내버리고 조곤조곤 대화로 푸는 것 같다. 우리보다는 많이 배워 그런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지켜보는 친정 부모도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도 내 친정 부모처럼 늘 사위 편이 되어 주신 것 같다. 아들의 마음에 저절로 장모의 사랑이 그려지는 걸 보면 부족한 사위에게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는 증거다.
 
동반자 되어 함께 걸어가는 자식 부부를 바라보며, 바람 잘 날 없이 끊길 듯 부서질 듯 이어지는 나날과 함께 종착지까지 친구 되어 잘 가길 응원한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작은 기도가 그들의 가정에 평안과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휴대폰 찾으러 온 딸의 차 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엔 쪼잔하지만 아들이 밉살스러워 기도에서 꼴찌로 불러야겠다. 하하.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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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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