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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김종인, 썩은 나무와 썩은 흙은 버려야 한다

중앙일보 2020.09.02 00:47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원웅 광복회장은 오래전부터 친노 정치권에서도 믿기 어려운 인물로 꼽혔다. 2003년 4월, 개혁당 대표로 느닷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제주에서 민족평화체전을 열기로 합의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곧장 대북 밀사설이 퍼졌다. 이튿날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기 마음대로 간 것”이라며 펄쩍 뛰었다. 한 달 뒤의 노무현 대통령 방미에 찬물을 끼얹는 돌출행동이란 것이다. 문 실장은 “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는 뚱딴지같은 인물”이라며 불쾌해했다.
 

정은경 지시 충실히 반영하고
극우·극단과 정치적 거리 둬야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론 담장 손질 못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애국가는 소중한 정치적 상징자산이다. 2012년 대선 때 “애국가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연대하지 않겠다”며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선을 그었다. 대선 TV 광고 ‘10만의 대합창’에서 문 후보는 애국가를 불렀다. 문 후보의 광화문 유세에 들국화의 전인권과 가수 이은미가 나와 부른 것도 애국가였다. 광복절 행사에서 김 회장이 그런 애국가를 면전에서 모욕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가만히 있었다. 청와대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지난 8년간 그만큼 인식이 변한 것일까. 어쩌면 친문 진영의 정서를 의식해 문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침묵을 지켰는지 모른다. 일종의 진영 논리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사태에서도 두 번이나 방역보다 진영 논리를 앞세웠다. 연초에 질병관리본부는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차단’을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외교와 방역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청와대와 외교부의 반대로 묵살됐다. 그 뒤엔 친중 진영 논리가 어른거렸다. 만약 질본 판단에 따랐다면 대만·베트남처럼 선제적 방어 조치로 대구·경북을 휩쓴 1차 재앙을 막았을지 모른다.
 
현재 진행형인 2차 확산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말은 부동산 역풍으로 4년 만에 처음 여야 지지율이 역전될 민감한 시기였다. 그 때 문 대통령이 “코로나에 지친 국민께 짧지만 귀중한 휴식시간을 드리고자 한다”며 임시공휴일을 들고 나왔다. 2분기 -3.3%의 역성장에도 “기적 같은 경제 선방”이라 자화자찬했다. 그 후폭풍이 8월 14일부터 확진자 세 자릿수(103명→166명)라는 재앙이었다. 지지율을 의식해 경제와 방역을 모두 잡겠다는 무리한 욕심이 화근이었다.
 
그제 임시공휴일에 대한 의견 수렴 논란이 일자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은 “당시 별도의 검토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동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해명이다. 그 이전부터 정 본부장은 기자들과 오찬에서 “질본 사람들은 명절과 연휴를 싫어한다.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크고 긴급 대응은 훨씬 어려워진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보수 진영이다. 8월 12일 사랑제일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무리하게 광화문 집회를 강행했다. 거친 진영 논리가 심각한 후유증을 부른 것이다. 행정법원의 판단도 아쉬움이 남는다. 법원은 “옥외집회에서 코로나19 확산사례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며 집회를 허가했다. 만약 사법자제 원칙에 따라 보다 전문적인 질본의 의견을 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연휴 이틀 전부터 정 본부장과 권준욱 부본부장은 번갈아 “사흘 연휴와 서울 집회는 일촉즉발의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절박하다”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돌아보면 진보 진영은 세월호·메르스·코로나 등 대형 재난 때마다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오죽하면 SNS에 “재난에 특화된 정권이다. 국민의 불행이 정권의 행복인 듯”이란 댓글까지 달리겠는가. 반면 보수 진영은 헛발질만 거듭했다. 이번에도 통합당은 뒤늦게 광화문 집회 이전부터 2차 확산의 징조가 있었다며 정부를 비난한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확산 주범으로 낙인 찍힌 극우 진영을 비호하려는 꼼수로 비칠 뿐이다. 더구나 일부 극단적 교회 신도들은 코로나 검사를 거부하거나 잠적해 염장을 지르고 있다. 이러니 건보공단이 55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자 “자영업자 피해보상까지 싹 받아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요즘 온 국민이 믿고 좋아하는 호남 출신 여성이 두 명 있다는 말이 있다. 가수 송가인과 정은경 본부장이다. 정치나 출신 지역을 떠나 우리 공동체를 위해 사심 없이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라고 다 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 만큼 정확하게 예측하고 과학적인 처방을 내놓는 경우는 없다. 지금 코로나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는 정 본부장과 권 부본부장이다. 이들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게 민심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길이다.
 
최근 소득주도 성장에 절망하고 부동산값 폭등에 상처받는 중도층이 통합당에 눈길을 주다가 광화문 집회 이후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있다. 막말을 일삼고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비호감 인물들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지금 통합당과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는 사회적 거리 두기만큼 정치적 거리 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더 이상 극단적 세력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격리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예로부터 공자도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는 담장을 손질할 수 없다”고 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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