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재정 만능과 정책 땜질이 빚은 내년 초팽창 예산

중앙일보 2020.09.02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한국 경제가 가시밭길로 가고 있다. 어제 국무회의를 통과한 내년 예산이 그 불길한 전조다. 내년 정부 총지출은 올해 대비 8.5% 증가한 555조8000억원 규모로 편성된다. 세 차례 추경으로 급증한 올해 총지출에 견줘서도 8조9000억원이 더 많다. 이 천문학적 예산이 얼마나 큰돈인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국유재산인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해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지난해 12조2087억원으로 평가됐다. 내년 예산은 경부고속도로를 45개 건설하고도 남는 돈이라는 얘기다.
 

국가채무 GDP의 46.7%, 재정건전성 위협
정책 방향 안 바꾸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내년 예산의 상당액이 집행되면서 없어지는 일회성 예산이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노동을 아우른 광의의 복지예산이 200조원에 이른다. 이 돈이 온전히 취약계층을 돌보고 저출산 극복과 함께 저소득층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인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시간만 때우는 알바성 노인 일자리가 포함된 공공일자리가 내년에는 올해보다 10만여 개 더 늘어난 103만 개로 확충된다.
 
디지털·그린·안전망 강화를 내세우지만 기존 사업을 짜깁기했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판 뉴딜에도 21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여기에는 뉴딜이란 명분과 달리 ‘인공지능(AI) 시대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비판이 나온 일자리도 포함돼 있다. 공공분야 데이터 라벨링이 대표적이다. AI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이 데이터를 정리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단순 작업으로, 중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비효율적인 예산 편성은 정책 땜질과 이에 따른 정책 책임자들의 ‘일단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와 무관치 않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통제를 비롯한 반(反)시장·반기업적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여파로 취약계층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 격차가 외려 커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 4년간 100조원이 넘는 일자리 예산을 투입하고 통계청장과 함께 통계 기준까지 바꿨다. 그런데도 정부는 30~40대 핵심 일자리가 살아나지 않자 정책 손질을 외면하고 양극화 해소를 명분으로 통계용 일자리 창출에 매달려 왔다. 재난지원금도 13조원을 뿌렸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정부는 선진국도 코로나 대응에 전시체제의 예산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가 성장동력 확충은 소홀히 한 채 재정 만능에 빠져들면서 올해 추경 예산을 반영한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돌파했다. 이 비율은 세수 부족으로 내년 적자 국채 발행액이 90조원에 이르면서 46.7%로 불어난다. 국가채무는 1000조원에 육박한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이 우려된다. 정부는 초팽창 예산 폭주를 멈추고 경제 체질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민간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나 재정 악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