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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하락 압력" 피치의 경고가 무색한 국가채무 급증

중앙일보 2020.09.01 18:18
정부 재정의 마지노선 역할을 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 선이 올해를 기점으로 무너진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신용등급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수준(2023년 46%)도 속절없이 허물어질 판이다. 
 

2024년 GDP 대비 채무비율 58%
유럽 복지국가도 60%가 마지노선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43.5%로 처음 40%대에 올라선다. 내년에는 46.7%, 2022년은 50.9%, 2023년에는 54.6%가 된다. 2024년 국가채무 비율은 58.3%에 달한다. 정부 예측이 낙관적인 경제 성장률과 지출 관리를 전제로 한 점을 감안하면 60% 돌파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 2021년도 예산안'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 2021년도 예산안'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채무 비율 60% 선은 유럽 복지 선진국에서조차 재정 마지노선으로 간주한다. 기원은 유럽연합(EU)의 출범을 알린 1991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달러화에 버금가는, 유로화란 기축통화를 믿고 회원국이 방만한 재정 지출을 할 위험이 커지자 EU는 마스트리흐트 조약 내 재정준칙을 명문화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60% 이하, 재정수지 적자는 3%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재정위기 그리고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이 기준이 무너지긴 했지만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이 수준을 한참 넘긴 유럽 국가는 곧잘 재정위기설에 휘말리곤 했다. 복지 선진국마저 두려워할 수밖에 수치다. 2012년 국가채무 비율이 81.1%까지 치솟았던 독일이 지난해 이 비율을 59.8% 끌어내리며 재정 구조조정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발간한 ‘재정 점검(Fiscal Monitor)’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7%다. 유로(유로화를 쓰는) 지역 평균(84.1%)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절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여기엔 그리스(2019년 기준 179.2%), 포르투갈(117.7%), 스페인(95.5%) 등 재정위기에 휩쓸렸던 국가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와 달리 스웨덴(34.8%), 뉴질랜드(30.2%), 룩셈부르크(22.0%) 등은 복지와 재정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가는 중이다. 한국보다도 부채 비율을 낮게 유지하는 중이다.
 
연도별 국가채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도별 국가채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물론 올해 들어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독일과 이들 북유럽 선진국조차도 재정 지출과 빚을 빠르게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일시적으로 증가한 국가채무 비율을 다시 줄인 재정 구조조정 경험이 있다. 정부가 지출과 빚을 대책 없이 늘려만 가는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경계해야 할 점은 또 있다. 유럽 선진국 대부분은 유로화란 기축통화 안전판으로 묶여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237.4%(2019년 기준), 109%에 각각 이르는 일본과 미국도 마찬가지다. 일본 엔화, 미국 달러화 모두 세계 무역ㆍ금융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다. 
 
한국 원화는 당연히 기축통화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세계 경기 외풍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수출 의존형이다. 급증하는 나랏빚을 방치하면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채무 비율은 국제신용평가사가 국가신용등급을 매길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미 지난 2월 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 46%까지 높아질 경우 국가 신용 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피치의 경고보다 2년 앞선 때인, 바로 내년에 국가채무 비율이 46.7%로 올라선다. 이후 50% 선도 뚫려 2024년이면 60% 선까지 위협한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급증하는 나랏빚 때문에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신용평가기관 중에서 피치는 GDP 대비 국가채무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주의력 있게 관찰하고 있는 평가기관”이라면서도 “코로나 위기 과정에서 약 190건 정도의 국가신용등급 하락 결정이 있었지만, 이제까지 3개 신용평가기관에 의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변동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신용평가사에) 정부로서 재정 역할의 불가피성, 재정 건전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최대한 설명을 하면서 대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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