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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기 안 쓰는 채소 저장고, 채소별 보관 온도 달라

중앙일보 2020.09.01 10:00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10) 

‘과소비사회에 등장한 비전화제품’.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냉장고만이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냉장고가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전기 없이 살아가는 발명가의 모임인 ‘비전화제작자’에서 몸소 실천하는 활동가들을 만나보았다.

 
비전화(非電化) 제작자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면서, 손을 쓰고 몸을 움직이며 기술을 익히는 재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만든 결과물을 보면 행복해진다고 해야 할까. 삶을 스스로 구성하는 힘을 키우면서 자존감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작자 ‘솜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트에 가면 1+1 행사제품을 많이 사서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결국 쓰레기로 버렸던 경험은 누구나 있잖아요. 돈을 주고 사서 돈을 버리고,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낭비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자연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음식을 저장해왔던 선현의 지혜를 참고하고, 음식 저장법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넓히기 위해서 비전화제품을 만든다고 했다.
 
햇빛식품건조기를 제작 중인 솜이.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햇빛식품건조기를 제작 중인 솜이.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당연히 냉장고가 필요한 때도 있죠.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관할 때 비로소 더 건강해지는 재료도 있거든요. 그리고 냉장고가 아니고서도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채소저장고를 제작한 잇다가 거들었다. 그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품 자체뿐만 아니라, 식재료 보관에 관한 생각의 폭을 넓혀보자는 데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대로 보관한 식재료로 요리해 먹자는 것이다.

 
그녀는 이어서 음식을 보관하는 다양한 방법이 부엌의 풍경을 조금 더 다채롭고, 부엌답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 댁을 떠올려보자. 마당을 가면 서로 키 자랑하듯 장독이 줄 맞춰 놓여 있고,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에 무청 시래기나 각종 수확물, 붉게 잘 말린 고추도 보이고,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와 벽에 걸어둔 양파망 등 모두 정감이 간다.

 
식품 과학의 발전에 따라 인류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환경오염과 음식쓰레기 등의 사회적 문제가 수반되었다. 이제 우리는 지구환경과의 공존, 생명 중심의 가치관으로 전환, 공장식 대량생산시대에 대한 성찰 등의 과제에 직면했다.

 
냉장고 프로젝트는 부엌에서부터 그 해법을 찾고자 했다. 대안이 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미래지향적인 식문화를 제시하기 위해 적정기술과 비전화운동의 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비전화제작자와 함께 조상이 물려준 지혜를 활용하고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는 저장고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채소저장고는 채소 각각이 가진 특성에 맞춰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를테면 감자의 경우는 어두우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통풍구를 냈다. 따뜻한 흙 속을 좋아하는 고구마의 경우, 왕겨를 넣은 서랍을 만들어서 보관고를 만들었다. 다른 칸에는 따뜻하면서도 직사광선이 닫지 않고, 날벌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색유리를 설치했다. 마치 부엌의 찬장 느낌이 나듯이 제작했다.

 
무엇보다 채소가 원하는 환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늘이나 월동배추, 시금치와 같이 겨울을 날 수 있는 작물은 비교적 서늘하게(영하 2도에서 영상 1~2도) 보관하고, 수박이나 오이처럼 여름이 제철인 채소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영상 10~15도) 저장한다. 바나나, 오렌지, 아보카도와 같은 열대 과일은 실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습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는 파프리카, 가지와 같은 작물은 다른 작물에 비해 많은 수분이 필요하다. 물컵이나 물통을 같이 넣어 수분을 보충해줄 수 있다.

 
비전화제품 도면.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비전화제품 도면.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두 번째 제품인 햇빛식품건조기는 태양열을 이용해 식품을 건조하는 제품이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들어온 태양열이 상자 내부의 온도를 60도 이상으로 높여준다. 식품이 가진 수분이 증발하면서 밖으로 나오게 되고, 앞뒤 통풍구를 통해서 흐르는 공기를 타고 수분이 배출되면서 식품이 점점 건조되는 방식이다. 볕이 좋고,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봄이나 가을 같은 경우에는 2~3일 정도면 먹기 좋게 바짝 건조가 잘 된다.

 
햇빛식품건조기에 제일 중요한 건 햇빛이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해가 어디에서 뜨고 지는지, 몇 시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자연의 은혜를 느낄 수 있다. 태양에너지를 받아 건조된 식품은 전기로 건조된 것과 비교해 맛과 영양이 더 많이 응축된다. 맛이 진해지고 식감도 좋아진다. 전기도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햇빛식품건조기로 과일, 채소, 고구마, 버섯, 각종 허브를 말려서 허브티나 뱅쇼, 오일 절임, 말랭이 등의 훌륭한 간식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태양에너지 저온고는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는 냉장고이다. 프레온가스 같은 냉매가 아니라 펠티에소자(peltier effect device)라는 장치를 이용해 만들었다.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프레온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자가전력을 가동한다. 펠테에소자를 이용하면 외부 온도보다 10도 정도 낮출 수 있다. 얼음을 얼릴 수는 없지만, 체감상 시원한 음료는 마실 수 있다.

 
펠티에소자는 펠티에 효과를 이용한 전자소자(電子素子), 전자냉각소자라고 한다. 펠티에 효과는 서로 다른 금속을 연결한 후에 전류를 흘려주면 한쪽은 발열하고, 다른 쪽은 흡열(냉각)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에너지를 받게 되면 온도가 높아지고, 에너지를 내주면 온도가 떨어지는 기능을 하는 장치이다.
 
태양에너지 저온고 완성된 제품.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태양에너지 저온고 완성된 제품.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제작자 잇다는 비전화제품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두 가지의 전제조건이 꼭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하나는 제철 먹거리를 사용할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적당량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특히‘적당량’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가 어렵죠. 식재료 자체에 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어느 정도의 주기로, 얼마만큼 소비하는지를 알아야 하거든요. 저희는 이 저장고가 나 스스로에 조금 더 관심을 두는, 나의 일상을 더 관찰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뒤이어 과묵히 있던 태양에너지 저온고 제작자 규온이 우리의 대화를 멋있게 정리해주었다. “저온고에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양만큼만 넣어서 사용한다면 전기효율을 걱정할 게 아니고, 내 삶의 효율을 조금 더 높이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음식과 식재료를 건강하게 먹음으로써 자아를 되찾는 길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건강하게 저장된 먹거리가 가장 좋은 풍미와 영양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입에서의 즐거움은 물론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도 바르게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비전화카페에서 사용하는 채소저장고.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비전화카페에서 사용하는 채소저장고. [사진 아시아문화원, 비전화제작자 제공]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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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윤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필진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아시아 지역의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관찰한다. 부엌과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냉장고 프로젝트>와 전통지식 및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위대한 유산 아시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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