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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 200조, 뉴딜에 21조…비판 흘려듣는 ‘마이웨이’ 예산

중앙일보 2020.09.01 08:30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내년에만 21조원 이상을 쏟아붓는다.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는 200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사회 안전망을 튼실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0만개 일자리를 유지‧창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민간의 투자 의욕을 북돋는 근본적 경제 개혁이 없으면, 숫자놀음식 돈 붓기에 그칠 것이란 걱정도 함께 나온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1년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종택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1년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종택 기자

홍남기, "뉴딜로 36만개 일자리 창출" 

정부가 1일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한 ‘2021년 예산안’의 간판 사업은 한국형 뉴딜이다.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와 같은 디지털 뉴딜에 7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그린 뉴딜엔 8조원을 지원한다. 공공시설 제로 에너지화,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이다. 구직자에게 최대 300만원을 지원하는 국민취업지원제도 신설과 같은 안전망 강화에는 5조4000억원의 돈을 들인다.  
연도별 예산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도별 예산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판 뉴딜에 투자를 늘리면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22.9% 늘어난 29조1000억원으로 책정됐다. 12개 분야 중 증가 폭이 가장 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한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인 ‘한국판 뉴딜’을 본격화하는 원년”이라며 “국비 기준으로 21조3000억원, 지방비 등까지 포함하면 총 32조5000억원을 투자해 36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시계를 넓히면 한국형 뉴딜에 대한 정부 투자 규모는 160조원(국비 114조1000억원 포함)으로 늘어난다. 
 

교육 예산 깎고, 국방 전력보강도 삭감

일자리를 포함한 복지 예산의 확장 기조는 이어간다. 정부는 보건‧복지‧고용 분야에만 199조9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본 예산 대비 10.7% 늘었다. 4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이다. 내년 전체 예산의 36%에 이른다.
 
이중 일자리 예산은 30조6000억원이다. 전년 대비 20% 늘었다. 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공공분야 직접 일자리를 103만개 제공한다. 민간 분야에선 청년 디지털 일자리 창출, 창업 지원 등을 통해 5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고용유지 지원금 지원을 통해 46만개의 일자리를 지킨다는 계획도 내놨다. 
 
내수 회복을 위해선 4대(농수산물‧외식‧숙박‧체육) 쿠폰 및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 등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해 얼어붙은 소비 진작을 꾀한다. 기업의 돈줄을 지원하고 신성장 투자산업 지원을 유도하기 위해선 33조9000억원의 재원을 들인다.
 
12대 분야 가운데 유일하게 올해보다 예산이 깎인 분야는 71조원이 배정된 교육(-2.2%) 분야였다. 국방 예산(52조9000억원)은 5.5% 늘었으나, 항공기·잠수함 등 전력보강 예산은 올해보다 899억원이 줄었다.    
2021 분야별 예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21 분야별 예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가 씀씀이를 계속 늘려왔기 때문에 이번 예산 증가율 8.5%는 9%대였던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벌이에 비하면 씀씀이는 매우 크다.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 총수입 증가율은 올해 대비 0.3%다. 지출 증가율보다 8.2%포인트 적다. 정부 안대로라면 수입과 지출 간 격차가 가장 크다. 정부는 이런 적자 살림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한번 꺼진 불씨는 아무리 풀무질을 하더라도 다시 살려내기 어렵다”며 “적극적 재정운용을 통해 경기 반등의 불씨를 살려내고, 내년 경기회복의 모멘텀으로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키고 만들어 내는 것은 물론 민간소비 및 투자‧수출‧지역경제 활성화 등 전방위적인 경기 지원예산을 확실히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거듭된 지적에도 ‘마이 웨이’예산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으로 인해 재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동의한다. 그러나 효과적인 쓰임이냐에 대해선 반신반의다. 이미 의문부호가 달린 한국판 뉴딜 사업은 사실상 그대로 정부 안에 담겼다. 부동산 정책처럼 일방통행식 ‘마이웨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 계획에 대해 “범용화된 기술을 단순 소비하는 사업이 단기적 경기 부양 효과는 있겠으나 중장기적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의 목표에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이미 지적했다. 예컨대 학교의 온‧오프라인 융합 환경 조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란 거창한 이름의 사업은 기실 와이파이, 전자 칠판, 빔프로젝터를 보급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정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판 뉴딜 사업이라고 하지만 그간의 ‘알바’ 일자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며 “규제혁신과 같이 민간이 투자를 늘리고,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병행하지 않으면 기존 정책의 실패를 답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간 투자 위주로 재편해야" 

일자리를 비롯한 주요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 일자리 중심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지속하고 있으나,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2017년부터 내년까지 정부가 일자리에만 쏟아부은 돈이 11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고용 성적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실업자 수는 113만8000명, 실업률은 4%로 7월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최고다. 코로나 19 여파가 있었다고 하지만 2018년에도 ‘고용 쇼크’를 보였고, 지난해에는 노인 일자리만 늘렸다.
 
미래성장 동력 역시 마련하지 못한 채 나랏돈이 특정 숫자 방어에만 급급하기도 했다. 미국 등 주요국 경기가 호황이었던 지난해 한국은 2%대 성장에 턱걸이했다. 이 중 정부 기여도가 1.5%포인트에 달했다. 올해 예산에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3대 분야에 대한 4조원 투자 계획이 담겼지만, 다른 사업에 비해 비중은 적다. 그나마 민간 기업이 성장을 주도하는 이런 분야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부가 단기적인 시계에서 공공 부문에만 투자하면 그 효과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며 “혹여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가 일자리 수치를 늘리고 성장률을 방어하더라도 나라 경제의 실력을 키우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 교수는 “한국형 뉴딜 및 미래 신산업에 대한 육성 방안을 민간 투자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눈앞의 방어에만 급급하면 당장의 숫자는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미래 성장 동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단기 성과만을 보고 재정을 마구 쓰는 건 효과는 없고 미래 세대에만 부담을 지우게 된다”고 강조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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