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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퇴직자 요청땐 가족 우선채용” 기업 130곳에 이런 단협 조항

중앙일보 2020.09.01 06:00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 유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기아차 노조 조합원이던 A씨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산재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달 27일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경우 유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해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기아차 노조 조합원이던 A씨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산재 유족 특별채용' 단체협약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달 27일 대법원이 노사관계의 논란이 되는 사안 중 하나에 종지부를 찍었다. 단체협약으로 노동자가 업무를 수행하다 재해로 숨졌을 경우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것은 위법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고용세습을 인정한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는가 하면 한편에선 "당연한 결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노동계는 당연히 후자다. 그렇다면 경영계가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현대·기아차동차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일하다 재해로 숨진 근로자와 관련된 자녀 채용을 고용세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모 경제단체 관계자도 "재해 사망의 경우 열심히 일한 근로자에 대한 회사 차원의 추가 보상의 성격이 강하다. 사회 통념상 문제 삼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사 모두 대법원 판결에 동의하는 셈이다.
 
이 사건에 대한 1·2심은 관련 단체협약 조항을 무효로 봤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103조를 인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망한 근로자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고 유족을 보호 또는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단협상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사용자가 부담할 재해보상 책임을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것으로 유족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라고 봤다.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에게는 유족연금 등으로 보상한다. 대법원은 이런 보상책은 법적으로 보장된 조치이고, 노사가 자율로 체결한 단체협약상의 보상은 보충적 보상의 성격이어서 별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대·기아차 그룹 관계자는 "근로자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 노조가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 2769개소의 단체협약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산재 유족 자녀 특별채용 단체협약 조항을 가진 곳은 505개소에 달했다. 당시 고용부는 이 조항에 대해서도 시정조치에 나섰지만, 곧바로 유보했다.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사안이기도 했지만 사회 통념을 저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2018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공공기관 채용비리 등과 관련해 '국민기만 문재인 정권의 가짜일자리 ,고용세습 규탄대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공공기관 채용비리 등과 관련해 '국민기만 문재인 정권의 가짜일자리 ,고용세습 규탄대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대신 고용세습을 명백히 조장한다고 판단되는 조항에 대해서는 사법처리까지 하며 정리작업을 벌였다. 청년 일자리가 심각한 상황에서 노사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시장을 교란한다는 판단에서다.
 
2016년 실태조사 결과 전체 42.1%인 1165개 사업장의 단체협약이 법을 위반한 조항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한 단체협약도 368개(13.3%)였다.
 
위법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실태와 현황 자료=하태경 의원실

위법 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실태와 현황 자료=하태경 의원실

위법 불합리한 단체협약 유형별 실태와 개선 현황    자료=하태경 의원실

위법 불합리한 단체협약 유형별 실태와 개선 현황 자료=하태경 의원실

노조 조합원 자녀를 우선채용 또는 특별채용하도록 하는 고용세습 조항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유형을 일부 소개한다.
 

정년 퇴직자의 요청이 있을 시 회사의 공개채용 또는 인원 소요가 있을 때 그 직계 가족을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업무상 또는 업무 외 상병으로(일하다가 다친 것이 아닐지라도) 불가피하게 퇴직한 자직계 가족 채용에 있어서 자격이 구비되었을 시 우선 채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10년 이상 근속자가 정년퇴직할 시 회사에서 필요부서 결원 시에는 자격을 갖춘 정년 퇴직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
조합원의 자녀가 채용시험에 응시해 성적이 외부 응시자와 동일하면 채용에 우선권을 준다.
▶회사는 직원 채용 시 채용기준에 적합하고 동일 조건의 경우 노조가 추천하는 자에 대하여 우선 채용한다.
▶회사는 자연 및 인위적인 감원으로 결원이 생겼을 경우 조합이 추천하는 자에게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우선 채용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단협 조항이 무려 583개(유족 특별채용 제외)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년퇴직·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단협을 가진 사업장은 130개소나 됐다.
 
당시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이런 조항은 청년 구직자들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하고, 노사관계 질서 훼손은 물론 대기업 정규직 부문의 이기적 행태로 노동시장의 격차 확대와 고용구조 악화를 초래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고용세습형 조항은 노조의 채용비리 원인이기도 했다.
 
단협으로 노조 조합원 특별채용 명시 유형(2016년 100인 이상 유노조 기업 실태조사) 자료=고용노동부

단협으로 노조 조합원 특별채용 명시 유형(2016년 100인 이상 유노조 기업 실태조사) 자료=고용노동부

고용부는 정년퇴직·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단협에 대한 시정절차를 진행해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바로잡았다. 끝내 시정하지 않은 S모티브는 올해 2월 사법처리했다. 노조는 현재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다. 나머지 S조선해양은 회생절차에 들어가 내년까지 교섭이 유예된 상태다.
 
하태경 의원(미래통합당)이 고용세습을 근절하기 위해 20대 국회 때인 지난해 2월 '고용세습 원천방지 법안'을 제출했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폐기됐다. 당시 법안에는 행정관청이 고용세습을 담은 단체협약은 신고를 반려하도록 해 고용세습을 사전에 차단하는 내용이 담겼다.
 
고용세습 이외에 회사에 노조 활동비를 강제하는 조항도 비일비재하다.
 

▶회사는 노조 전용 차량을 제공하고, 운행 불능 시 새 차를 제공한다.
차량은 4년마다 정기적으로 교체한다. 유류비를 지급한다.
노조 활동 지원을 위해 매월 300만원을 지정된 계좌로 입금한다.
▶월 30만원씩 전임자 수당을 지급한다.
조합활동 관계로 국내 출장 시 근무로 간주해 출장비를 지급한다.
일체의 교섭은 본 조합하고만 하며, 타 조합과는 교섭하지 아니한다.

 
노조의 자주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조항이다. 외국의 노조는 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금품에 대해 극도로 경계한다. 자주성을 해치고, 회사에 종속될 위험성이 있어서다.
 
경영·인사권 침해 조항도 만만찮다. 무려 368개 사업장에서 발견된 조항이다.
 

채용, 승진, 승급, 휴직, 전직, 전보, 배치전환, 징계, 해고 등은 조합과 사전 합의 후 실시한다.
조합 간부에 대한 임면과 이동은 조합 동의 얻어야 가능하다.
하도급 줄 때는 조합의 사전 동의 필수
비정규직의 채용 시 범위와 인원, 규모를 노조 동의 또는 노사 합의로 시행한다.

불합리한 단체교섭 유형별 현황       지료=하태경 의원실

불합리한 단체교섭 유형별 현황 지료=하태경 의원실

 
경영이나 인사권 침해가 우려되는 이런 단협 조항은 위법한 것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고용부는 '불합리한 사항'으로 규정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용구조를 왜곡하는 것은 물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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