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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갈릴리 바다 위를 걸은 예수? ‘어떻게’보다 ‘왜’가 중요하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갈릴리 바다 위를 걸은 예수? ‘어떻게’보다 ‘왜’가 중요하다

중앙일보 2020.09.01 05:00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성경에는 예수님의 숱한 이적이 등장합니다. 다들 묻습니다. “이게 사실인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인가.” 그런데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이 이적 일화가 왜 성경에 실렸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적 일화의 사실 여부모다 이 일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성경 속 예수님의 이적 일화는 참 넘기 힘든 고개입니다. 저희 주위에도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물어보고 싶은데, 묻지를 못하겠어. 이런 걸 물어보면 괜히 ‘신앙이 약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라며 망설이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실제 그걸 물었는데 “그건 네 믿음이 약해서 그런 거야”라는 답을 들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답을 들으면 성경과 예수에 대한 다른 물음표가 올라와도 질문을 던지기가 어려워집니다. “네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는 똑같은 대답이 또 날아올테니까요.  
 
성경 속 예수님의 이적 일화는 무작정 믿어야 하는 걸까요? 그래야만 믿음이 강한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가슴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여러 물음표는 어떡할까요? 그 물음표가 풀려야만 내 마음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수님의 이적 일화를 받아들일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이렇게 남 모르는 오래된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성경에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걸 본 배 안의 제자들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성경에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걸 본 배 안의 제자들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그래서 오늘은 성경 속 이적 일화 중에서 ‘물 위를 걷는 예수’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물 위를 걸었을까. 거기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겼을까. 또 2000년 전 유대 역사의 어떤 코드가 연결돼 있는 걸까.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보여준 기적이 많다. 그런데 그 중에 저한테 가장 큰 미스터리는 ‘물 위를 걷는 예수’다.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물 위를 걸은 건가? 아니 일단 물 위를 걸은 건 팩트인가?
 
“요즘 시각으로 보면 초능력이다. 수상 스키를 탄 것도 아닌데, 물 위를 걸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따진다. 물 위를 걸은 게 사실인가, 아닌가. 사실이라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데 여기에는 훨씬 더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더 깊은 메시지? 힌트를 달라. 어떤 메시지인가.  
 
“‘물 위를 걷는 예수와 같이’. 이 대목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 것 같나?”
 
해가 떨어지는 갈릴리 호숫가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해질 무렵 갈릴리 호수는 무척 평화롭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해가 떨어지는 갈릴리 호숫가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해질 무렵 갈릴리 호수는 무척 평화롭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불교식으로? 그게 가능한가. 어떤 건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굳이 말하자면 ‘파도에 젖지 않는 예수와 같이’ 이렇게 말이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곳은 ‘갈릴리 호수’라는 곳이다. 예전에 선배가 ‘씨 오브 갈릴리’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왜 영어로 하면 ‘씨(sea)’인가?
 
“‘갈릴리 호수’하면 다들 막연하게 큰 호수겠지 생각한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보면 첫 마디가 이렇다. ‘우~와, 바다네. 호수가 아니라 바다구나’ 그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영어로는 ‘씨 오브 갈릴리(See of Galilee)’라고 부른다. 갈릴리 바다, 이런 뜻이다.”
 
갈릴리 호수의 옛날 모습을 그린 작품. 호숫가에 유대교 회당이 보인다. 지금은 티베이라스를 중심으로 많은 호텔과 팬션이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갈릴리 호수의 옛날 모습을 그린 작품. 호숫가에 유대교 회당이 보인다. 지금은 티베이라스를 중심으로 많은 호텔과 팬션이 들어서 있다. [중앙포토]

 
갈릴리 호수는 성경에도 등장하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곳이다. 그러니 유대인에게 갈릴리 호수는 아주 신성한 곳이겠다.  
 
“기독교인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또 다르더라. 제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로 갈 때, 옆자리에 30대 후반쯤 되는 유대인 남자가 탔다. 그 사람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이었다. 제가 ‘갈릴리 호수에 가봤느냐?’고 물었더니, 첫 마디가 이랬다. ‘아, 거기. 휴양지로는 최고야. 호수가 커서 수상 스키 타기에도 정말 좋아.’ 이렇게 말하더라.”
 
유대교는 예수님을 ‘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인가?
 
“바탕에는 그게 깔려 있다고 본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에게 갈릴리 호수는 그냥 ‘멋진 휴양지’ 일 뿐이었다. 저도 좀 뜻밖이었다. ‘갈릴리 호수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은 곳인데……”라는 식의 설명과 소개가 나올 줄 알았다.”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자 제자들은 이미 배를 타고 떠난 뒤였다. 예수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갔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중앙포토]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자 제자들은 이미 배를 타고 떠난 뒤였다. 예수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갔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중앙포토]

 
성경에는 많고 많은 이적이 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을 낫게 하고 등등. 그런데 예수님은 왜 하필 물 위를 걸으신 건가? 거기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있다. 가령 천국이 어떤 곳일 것 같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떨 것 같나?”
 
음…, 뭔가 사랑이 넘치고 서로 배려하고 모두가 행복한 곳? 영원히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곳? 그런 곳 아닐까?
 
“예수님이 어디 사람인가?”
 
이스라엘 사람이다 유대인이었지 않나.
 
“그렇다. 예수님도 유대인이고,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도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그러니까 유대교를 믿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 믿는 ‘천국’이 있었다. 천국은 이런 곳이고, 천국 사람은 이러이러하다. 그런 천국의 풍경이 있었다.”
 
유대 제사장 가문 출신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와 그의 저서. 예수 당대를 기록한 역사서는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서, 둘 밖에 없다. [중앙포토]

유대 제사장 가문 출신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와 그의 저서. 예수 당대를 기록한 역사서는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서, 둘 밖에 없다. [중앙포토]

 
유대인이 믿던 천국의 풍경이라. 잠시만,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지 않나. 2000년 전 유대인이 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가가 남긴 『유대 고대사』『유대 전쟁사』라는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다. 그의 책에도 ‘나사렛 예수’에 대한 기록이 잠깐 등장한다. 지금 남아있는 예수님 당대의 기록은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서, 둘밖에 없다.”
 
흥미롭다. 거기에 뭐라고 기록돼 있나?
 
“이렇게 적혀 있다. ‘천국은 잠도 없고, 슬픔도 없고, 타락도 없고, 걱정도 없는 곳이다. 천국은 시간으로 재는 낮과 밤도 없다. 계절이 생겨나고 변화하게 하는 해도 없고, 달도 없다. 회전하는 곰자리 별도 없고, 오리온자리 별도 없고, 유리하는 수많은 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게 당시 유대인들이 믿던 천국이다.”
 
갈릴리 호수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햇살이 비치면 호수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갈릴리 호수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햇살이 비치면 호수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해가 질 무렵, 갈릴리 호수 위를 새들이 날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바다라고 불릴만큼 넓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해가 질 무렵, 갈릴리 호수 위를 새들이 날고 있다. 갈릴리 호수는 바다라고 불릴만큼 넓다. 갈릴리=백성호 기자

 
뭐가 다 없네? 천국에는 모든 게 다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특이하다. 해도 안 뜨고, 달도 안 뜨면 날이 가는 줄 모르지 싶다. 달력을 넘길 일도 없을 거고. 결국 천국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다시 말해 천국은 영원한 곳이란 말이다. 이게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천국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어땠나. 당시 유대인들은 천국 사람은 어떨 거라 믿었나?
 
“거기에 대한 기록도 있다. ‘천국에서는 여행을 하기가 쉬워진다. 천국의 바다는 파도가 치지 않으며, 천국 사람은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 이렇게 돼 있다. 갈릴리 호수는 바다다. 요즘도 수시로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친다. 천국 사람이라면 어떡해야 하나.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천국 사람은 물 위를 걷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물 위를 걷는 예수를 천국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앙포토]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천국 사람은 물 위를 걷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물 위를 걷는 예수를 천국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앙포토]

 
아, 잠깐만, 잠깐만. 그러니까 뭔가. 당시 유대인들은 바다 위를 걸으면 천국 사람, 못 걸으면 천국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건가?
 
“당시 유대인의 상식에는 그랬다. 정말 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군가? 신의 아들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럼 어디 사람인가? 하늘 나라 사람이다. 천국 사람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게 당시 유대인들이 믿던 천국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럼 어떻게 생각하겠나?  ‘아, 예수님은 정말 천국 사람이구나! 하늘 나라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을 때, 배 위에는 제자들이 타고 있었다. 그럼 배 안에 있던 유대인들도 그렇게 반응을 했나?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직접 본 유대인들은 뭐라고 말했나?
 
“이 장면이 성경에 기록돼 있다. 마태복음 14장33절에 나와 있다. 물 위를 걷던 예수님이 배 위에 올라갔다. 그랬더니 배 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엎드려서 예수님한테 절을 했다.”
 
 
배 위에서 절을 했다고? 이건 좀 뜻밖이다. 그래도 그건 일종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한 존경 내지 숭배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나?
 
“배 안에 있던 유대인들이 절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왜? 물 위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을 한 거다.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구나, 천국 사람이구나. 이걸 인정한 거다. 저도 요세푸스의 역사서에서 이 대목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물 위를 걷는 예수’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 외에도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더 깊고, 더 본질적인 메시지가 녹아 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건 다음 편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에 담긴 더 깊은 울림과 메시지. 기대해 주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ㆍ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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