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전공의 파업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중앙일보 2020.09.01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많은 사람이 전공의 파업에 대해 불만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 확산이 다시 거세지는 지금 꼭 그래야만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전공의들이 국민 안전을 담보로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먼저 생각할 것은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는 지다.
 

전공의 파업, 밥그릇 싸움인가
의료체계 개선 없는 의사 증원
의료서비스 향상 기대할 수 있나

그들은 병원에 있다. 반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사태로 섬처럼 고립된 그곳에서 매일 쪽잠을 자며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진 방침과 기준에 따라 고되게 일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은 그들 역시 우리와 같다. 확실한 것은 이 사태가 끝나더라도 그들의 차례는 가장 마지막이라는 사실이다. 마지막 감염자가 퇴원하는 것이 코로나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은 가장 마지막에 내리는 3등 선실에 타고 있다. 어떤 얼빠진 납치범도 3등 선실에서 인질극을 벌이지는 않는다.
 
엘리트 집단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말도 어불성설이기는 마찬가지다. 전공의가 직면하는 실패를 떠올려보자. 회사라면 엑셀 표에 숫자 하나 잘못 넣은 것에 불과한 실수가 병원에서는 환자를 사경에 빠뜨린다. 슬쩍 넘어갈 수 있는 기계 오조작도 수술실에서는 환자의 장애나 사망으로 이어진다. 전공의를 포함해 모든 의료인이 마주하는 실패는 어떤 것으로도 결코 등가 보상할 수 없는,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죽음이다. 그것들은 회사의 손실이나 채무처럼 추상적이거나 조직 전체로 흩어져 먼지처럼 작아지지 않는다. 하나하나가 끔찍할 만큼 명확하고 생생하게 인간적이다.
 
그들은 엘리트이며, 엘리트여야 한다. 평범한 회사원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것도 그런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치료의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이자 실패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다. 직업의 사명감과 공공성을 누구보다 의식하는 것도 의사들이다.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엘리트 직종 중에서 그들은 왜 의사의 길을 택했을까? 그것도 지금처럼 재택 근무하며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는 시기에? 답은 명료하다. 그들은 이미 의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3등 선실에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파업의 여파를 잘 알면서도 강행하는 것 역시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통계치를 동원한 정부의 주장은 얼핏 그럴싸하게 들린다. 의료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고, 진료 수준도 떨어진다, 그러니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공공 의대를 건립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서울시 택시 서비스가 엉망이다. 바쁠 때 잘 안 잡히고 서비스 수준도 낮다. 그러니 택시 기사를 더 늘리고 공영 택시도 만들자고.
 
퇴출당한 ‘타다’ 서비스가 혁신적이었던 것은 기사들의 수익 구조를 정상화했기 때문이다. 요금이 아니라 월급을 받은 ‘타다’ 기사는 손님과 목적지를 가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택시 사납금 제도가 없어진 것이 그것을 명증한다.
 
현재 의료계 문제도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의료 수가 원인이 가장 크다. 정책적 판단으로만 결정된 의료 수가 때문에 인력은 비보험 급여가 많은 과로 몰리고 병원은 장례식장과 푸드 코트 운영을 잘할 수록 더 유능한 전문의와 더 많은 전공의를 고용한다. 이 왜곡구조를 그대로 놓아둔 채 의사 수만 늘린다면 결과는 뻔하다. 사납금 제도를 두고 택시 기사만 늘렸을 때의 ‘지옥’이 의료 서비스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부가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반발하더라도 코로나 사태와 엘리트 집단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프레임으로 싸잡으면 무릎 꿇릴 수 있다고 계산한 걸까?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하고 멍청한 것이고, 계산했다면 비열하고 악랄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인질로 삼고 있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 정부라는 사실이다. 3등 선실이 아니라 함교에 있는 것은 정부 아닌가.
 
전공의 파업은 뻔히 보이는 암울한 의료 서비스만을 위한 저항이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민주주의 근간인 절차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위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프레임으로 몰아 압살하려는 정부와 지지자들의 대응은 2016년 이화여대의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 이대생들의 저항은 학벌주의에 물든 엘리트의 반항으로 매도당했다. 하지만 그 저항이 드러낸 진실은 무엇이었나? 지금 전공의 파업은 정부의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가? 전공의 파업 내용을 직시할수록 그것에 연대와 지지를 표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혁진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