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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니스트의 눈] 공장형 대학에서 지식 큐레이팅 대학으로

중앙일보 2020.09.01 00:13 종합 20면 지면보기

코로나 시대의 대학

칼럼니스트의 눈 메인

칼럼니스트의 눈 메인

코로나 2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아침, 필자의 머릿속을 맴도는 숫자는 7, 30, 70이다. 지난봄 코로나가 온 세계를 덮치면서 대학들은 서둘러 비대면 온라인 교육으로 전환하였었다. 알다시피 코로나는 여전히 극성이고 대학의 학습자와 교수자, 행정 부처들은 모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적잖은 혼란과 타협 속에서 초유의 비대면 학기는 마무리되었다.
 

코로나 이후 ‘블렌디드’ 선호될 것
대학, 수업 방식·커리큘럼 바꾸고
지식 큐레이팅 방식도 혁신해야
비대면 협업용 강의실·도서관 필요

코로나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하는 지금, 응급 대응과 어수선함을 넘어 고등교육 디지털 전환의 명암을 꼼꼼히 따져볼 시간이다. 지난 학기 필자가 경험했던 바를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 대학이 처한 위기, 적응, 전망을 소개하고자 한다. 7, 30, 70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디지털 전환의 과거·현재·미래를 가리키는지를 이제부터 풀어보자. (필자는 상대적으로 기회와 자원이 나은 편인 서울 소재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들께서 감안해 주길 바란다.)
  
온라인 블렌디드 교육은 코로나 이전부터
 
먼저 7이라는 숫자. 실은 코로나 이전에도 필자가 진행하는 학부 수업의 처음 7분은 온라인 블렌디드로 시작하였다. 직사각형 강의실을 꽉 메운 70~80명의 학생들에게 그날 강의의 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통로는 동영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트럼프 현상을 다루는 날, 강의 서두에 트럼프 현상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함께 시청할 때 학생들은 쉽게 몰입한다. 7분 분량의 동영상을 보고 난 후(3분은 짧고 10분은 길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감상을 묻기도 하고, 동영상의 핵심을 풀어서 부연 설명을 하게 된다. 트럼프 현상의 이론적 쟁점, 예컨대 트럼프 포퓰리즘이 백인 노동자와 중하층에게 집중되는 이유를 하나씩 설명하다보면 단순히 파워포인트 화면에 띄어놓는 내용보다 전달력은 높아진다. 다시 말해 코로나 이전에도 필자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강의실에서 동영상 학습 자료와 학생들의 반응, 교수자의 설명은 이미 융합되어 있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블렌디드 강의를 강의실이 아닌 온라인 상에서 전면적으로 단번에 이뤄지도록 강제했을 뿐이다.
 
지난 3월부터 필자는 7분짜리 동영상을 포함한 블렌디드 강의를 30분짜리 녹화 동영상으로 바꾸어야 했다. 코로나 이전 필자의 역할은 유튜브의 바다에서 7분짜리 동영상을 골라내고 학생들에게 소개하던 동영상 큐레이터였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강의 동영상의 각본·주연·제작·편집의 역할을 한꺼번에 떠맡게 되었다. 매주 두어 개씩 만드는 30분짜리 동영상 강의는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한 유튜브 영상, 카툰, 도표들이 초반에 배치되고 이어서 필자의 설명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코로나 이전 블렌디드 강의에서 온라인 자료와 대면 설명, 토론의 비율이 7분 대 70분이었다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 강의에서 온라인 자료와 대면 토론의 비율은 70분 대 0분 정도로 바뀐 셈이다. 필자가 주연이 된 동영상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코멘트·질문을 온라인 게시판에서 확인하곤 하였지만 그 숫자는 미미하였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의사소통
 
코로나 학기 중에 학생들과 교수자의 의사소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희망의 숫자는 70이었다. 70%라는 학생 숫자가 왜 희망의 실마리인지를 살펴보자. 필자는 지난봄 학기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3페이지짜리 연구 에세이를 과제로 부과하였다. 학생들은 개강 후 1달 이내에 자신이 관심 있는 연구 주제의 제목과 예비 목차를 제출한다. 봄 학기 학생들이 다룬 주제들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한 한국의 정책대응 ▶미국 학교의 장애인 통합교육의 역사였다. 학기 중간에는 줌(zoom)으로 학생들이 부딪치는 문제들, 즉 자료 찾기, 주제 좁히기, 글의 구조 짜기 등에 관한 고민을 듣고 필자와 의견을 주고받는 온라인 세션을 두세 차례 가졌다. 코로나 학기 이전에도 필자는 성적 평가에서 에세이 쓰기에 높은 비중을 두었다.
 
에세이 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필자의 주장은 이랬었다.
 
“우리는 대학 4년간 소화하기에 불가능한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다. 지구 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는 구글과 네이버를 통해 단 하나의 온라인 도서관으로 통합되어있다. 게다가 인류 최초의 이 거대 도서관은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20세기처럼 표준화된 지식을 섭취·암기하고 평가하는 것은 내일이면 쓸모없는 일이 된다.”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적실성 있는 질문을 제기하는 능력이다. 질문에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인류 대도서관으로부터 추출·정리·조합하여 일관된 진술과 입장으로 정리하는 능력, 즉 지식의 큐레이팅 능력이 핵심이다. 교수자는 여러분의 지식 큐레이팅 능력을 개발하도록 돕는 조력자일 뿐, 더 이상 선생도 아니고 공동학습자(mutual learner)도 아니다.”
 
학생들은 5월 하순경 개인 에세이를 제출하였다. 필자는 학생들의 개별 에세이에 대해 글의 구성과 전개, 경험적 근거와 주장 사이의 연관 등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서 과제 게시판을 통해 돌려주었다. 아울러 학생들이 필자의 코멘트를 (부분)수용하여 다시 제출할 경우, 재채점하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놀라운 일은 이때 벌어졌다. 상당수의 학생이 절대 평가에 따라서(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은 코로나 1학기의 평가 방식을 절대 평가로 신속히 전환하였다.) 이미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전체 학생의 70% 이상이 에세이를 수정하여 다시 제출하였다.  
 
필자의 코멘트를 수용하기도 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문장을 다듬고, 논점을 더 명확히 하여 과제를 다시 제출하였다. 학생들은 또한 과제를 수정 제출하면서 필자의 코멘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과제 제출 화면에 일일이 올려놓았다. 이에 필자는 50편이 넘는 에세이를 다시 채점해야 하는 숙제를 떠맡게 되었다. 또한 학생들의 재제출 코멘트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야 했다. 수십 개의 학생 댓글에 대 댓글을 달면서 필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의 소통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있었다.
  
대학혁명은 이제부터
 
내년 혹은 후년쯤 코로나가 통제 가능해지고, 우리가 캠퍼스로 돌아갔을 때 그곳이 우리가 알던 코로나 이전의 대학은 아닐 것이다. 비대면 강의의 편리함과 디지털 일상에 익숙한 학생들은 온라인 비중을 훨씬 높인 블렌디드 수업을 선호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교수자들과 대학 행정부처는 단지 수업 방식과 커리큘럼의 전환만으로 학생들의 변화하는 요구에 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식 큐레이팅 방식, 학과별 편제뿐만 아니라 강의실·도서관·편의시설의 구조와 설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 개인이 자기주도 학습에 몰두할 수 있는 동굴형 공간, 여러 사람이 대면·비대면으로 협업 학습을 하는 모닥불 형 공간, 그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우물형 공간 등을 중심으로 캠퍼스는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전환이 지체된다면 학생들은 결국 미네르바 칼리지, TED, Edx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코로나 19가 정부와 시민의 역할, 국제질서, 개인 라이프 스타일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듯이, 대학 역시 혁명의 초입에 서있다.
 
21세기 지식 큐레이팅 대학
공장형 대학 지식 vs 큐레이팅 대학

공장형 대학 지식 vs 큐레이팅 대학

20세기 포드주의 시장경제의 지식 파트너는 공장형 대학이었다. 표준화된 교과서와 정형화된 지식, 암기와 시험을 통한 인재의 등급 매기기가 공장형 대학의 뼈대였다. 21세기 플랫폼 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대학의 존재 양식은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지식은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지식의 축적보다는 지식의 큐레이팅 능력을 다듬어야 한다. 애플의 교육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존 카우치는 표와 같이 과거와 미래의 교육을 비교하고 있다.

 
장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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