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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카라얀의 회사가 무너졌다

중앙일보 2020.09.01 00:11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90년 된 회사가 문을 닫았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겼고 최대 규모였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 컬럼비아아티스츠(CAMI)다. CAMI는 지난달 29일(뉴욕 현지시간) “채무 변제를 위해 자산 신탁 계약을 맺었다”며 31일부터 법인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속돼 있는 연주자 등 아티스트 400여명에게도 e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1930년 문을 연 후 음악 시장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회사다. 가능성 있는 연주자를 영입하고, 공연장이나 연주단체와 협의해 이들의 무대를 마련했으며, 때로는 무대 위의 작품도 직접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맨해튼 카네기홀의 한 블록 옆에 사무실을 둔 CAMI의 역대 아티스트 이름은 황금기의 역사 자체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그리고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다.
 
음악 공연의 황금기를 이끈 매니지먼트사 CAMI. [홈페이지 캡처]

음악 공연의 황금기를 이끈 매니지먼트사 CAMI. [홈페이지 캡처]

CAMI는 폐업을 알리는 성명서의 도입부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계속되는 팬데믹 환경을 견뎌왔지만 회사의 문을 닫는 소식을 알리게 돼 무거운 마음입니다.” 공연 제작자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게 CAMI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였다. 가장 먼저 나타나 권위를 선점했다. 코로나19 확산 6개월 만에 거대한 회사 하나가 쓰러진 거다.
 
하지만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은 아니다. 연주자들을 영입해 대형 무대와 연결하고 커미션을 떼는 방식의 낙후함에 대한 지적은 계속 있었다. 특히 영국의 음악 평론가인 노먼 레브레히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계약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CAMI를 비판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환경의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소형 부티크 매니지먼트들이 영리하게 마케팅을 하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CAMI에서 30년 동안 대표를 지내며 매니저계의 거장으로 불렸던 로널드 윌포드가 2015년 타계했을 때 뉴욕타임스는 부고에서 “고인의 막강했던 파워는 경쟁사들의 성장과 산업의 변화로 약해졌다. 그의 시대는 먼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윌포드는 지휘자들의 시간을 쪼개 비행기로 대륙을 옮겨 다니도록 계약을 시키며 이윤을 올렸고, 날로 거세지는 비판에 직면했다.
 
CAMI의 폐업에서 코로나는 마지막 도미노 조각이었다. 칼로 도려내듯 코로나의 피해만이라고 볼 수는 없고, ‘이렇게 큰 회사가 코로나로 무너졌으니 나머지는 …’이라며 마냥 우울해 할 일도 아니다. 물론 코로나는 전혀 없었던 풍경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계속돼온 변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도 많이 했다. 90년 된 회사의 폐업으로 코로나는 변화 촉매제 역할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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