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건 아니잖아요, 술집 닫자 직장인 '편맥' 대학생은 '광술'

중앙일보 2020.09.01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이 바뀌고 있다. 낯선 사람들로 붐비는 일반 대중음식점보다는 도시락 등 간편한 포장 음식으로 사 내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31일 서울 시내에서 직장인들이 포장한 음식을 들고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직장인들의 점심 풍경이 바뀌고 있다. 낯선 사람들로 붐비는 일반 대중음식점보다는 도시락 등 간편한 포장 음식으로 사 내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31일 서울 시내에서 직장인들이 포장한 음식을 들고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도심 풍경이 변했다. 점심시간 자리가 빼곡했던 식당들은 한산했고, 줄지어 늘어섰던 커피숍은 발길이 끊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된 후 첫 평일인 31일 오후의 직장가 모습이다.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만 명을 돌파했다.
 

방역 2.5단계 월요일 맞은 수도권
직장인 점심 도시락 주문 늘고
재택 많아져 도심 식당가 한산
국내 누적 확진자수 2만명 돌파

밤 9시 방역 사각지대 감염 우려
지자체 “규제 지침 없어 단속 난감”
방역 당국 “모든 활동 차단 불가능
강제력보다 국민 협조 중요한 때”

서울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지호(28)씨는 이날 점심에 단체로 도시락을 시켜 먹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가급적 점심때도 밖에 나가지 말라”는 회사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화문 일대 식당가는 썰렁했다. 재택근무로 회사에 나오지 않는 직장인이 늘었고, 김씨처럼 사무실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이가 많아서다. 이날 기자가 둘러본 광화문 근처의 식당 중엔 손님이 절반 이상 찬 곳이 없었다. 한 식당은 “6일까지 자진해서 당분간 휴업한다”고 써붙이기도 했다.
 
도시락 주문이 늘자 배달업체는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광화문 인근의 한 도시락업체 배달기사 이모(23)씨는 “주문이 밀려 눈코 뜰 새가 없다. 1~2주 전과 비교하면 1시간에 주문이 20~30개 정도는 더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본도시락’의 매출도 크게 상승했다. 수도권 내 코로나19 집단감염 우려가 높아진 지난달 15일부터 26일까지 매출이 전주 대비 26.2% 증가했다.
 
포장이 쉬운 김밥집이나 샐러드집에도 직장인들이 몰렸다. 한 김밥집 앞에서 만난 직장인 박모(38)씨는 “팀원들의 식사를 포장해 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며 “회사도 권장하고 직원들 역시 밖에서 먹기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이 김밥집엔 배달 주문을 받고 온 기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반대로 착석이 금지된 프랜차이즈 카페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낮 12시30분쯤 서울 도심의 한 카페엔 직원 6명이 있었지만, 10분간 손님은 단 한 명뿐이었다. 대신 테이크아웃 전용 커피가게를 찾는 이가 늘었다. 직장인 김승철(34)씨는 “카페에 가도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니까, 비싼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실 필요 없이 가격이 싼 테이크아웃 전용 커피가게에 왔다”고 했다.
 
배달이나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식당들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서소문동에서 김치찌개집을 운영하는 강기수(50)씨는 “손님들이 작년 대비 30%밖에 안 오고 있다”며 “정부에선 최대한 배달을 하라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 파는 찌개류나 곱창 등은 갑자기 배달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평소 이 식당엔 오전 11시30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서지만 이날은 대기 인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30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 중인 한모(62)씨 역시 “평소 점심에 80인분씩 팔았는데 요즘엔 30인분도 못 팔고 있다”며 “‘IMF 외환위기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힘들다. 우리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비싸지 않아 IMF 금융위기 때도 손님이 줄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이건 아니잖아요, 술집 닫자 직장인 ‘편맥’ 대학생은 ‘광술’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후 첫 평일인 31일 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 일대가 인적이 뜸하다. [연합뉴스]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후 첫 평일인 31일 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젊음의 거리 일대가 인적이 뜸하다. [연합뉴스]

저녁 풍경은 더욱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오후 8시30분쯤 종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강모(65)씨는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 중 두 곳에만 손님이 있다”며 “아예 ‘저녁이 사라진 식당’이 됐다”고 했다. 인근의 즉석 떡볶이집 사장인 40대 김모씨도 “오후 7시30분 넘어서는 손님이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역 인근 먹자골목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오후 8시40분쯤 일부 프랜차이즈 카페와 술집은 일찍부터 불이 꺼져 있었다. 차돌박이집을 운영하는 조영일(52)씨는 “일부 손님들은 9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면 기분 상한 티를 내곤 한다”며 “6~7년 일한 직원들에게 쉬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순댓국집 사장 김민숙(47)씨도 “9시 이후 손님을 받으면 벌금을 내야 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다”며 “3단계로 격상되면 장사는 정말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서울 남대문시장 식당 골목 역시 점심시간임에도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최정동 기자

같은 날 서울 남대문시장 식당 골목 역시 점심시간임에도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최정동 기자

한편 규제 대상이 아닌 일부 편의점이나 개인 카페 등엔 오히려 사람이 몰리고 있다.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편맥(편의점+맥주)’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자주 올라왔다. 한 여성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맥주캔이 올려져 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며 “술집이 9시에 문을 닫아 간만에 편의점 노상을 했다”고 했다. 트위터에는 “편의점 앞에서 사람들이 술을 먹고 있었는데 순간 호프집인 줄 알았다”는 글도 있었다.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박모(여)씨는 “이날 손님들이 평소 주말보다 늘어서 바빴다”며 “야외 테이블 점유율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편의점 앞에서 소규모 모임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부 지침이 없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람이 여럿 모이는 건 상식적으로 안 되는 일지만 (시행 초기라 단속 대상에 대해) 뚜렷한 정리가 안 됐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편의점업계는 수도권 점포들의 취식 공간을 오후 9시까지만 운영하도록 점주들에게 권고했다.
 
수도권에 위치한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다음 달 6일까지 운영이 중단된다. [뉴스1]

수도권에 위치한 헬스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다음 달 6일까지 운영이 중단된다. [뉴스1]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술판을 벌인 학생들도 있었다. 이날 새벽에 서울의 한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학교 광장에서 학생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빗발쳤다. 여기엔 “나라에서 코로나19 확산 막는다고 술집을 닫았더니 대학생들은 광장에서 술을 먹는다, 장래가 밝다” “노래까지 부른다, 조용히 해달라” 등의 내용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매장 취식이 금지됐지만 일부 소규모 업체는 배짱 영업을 했다. 연남동 등 서울 지역에만 7개 정도 매장이 있는 A커피전문점은 ‘2.5단계’ 시행 첫날인 지난달 30일 SNS에 “전 지점 오후 9시까지 매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알렸다. 이곳 관계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점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업종 구분 없이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자 안에 직영점 형태로 포함된다면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정부 지침보다 국민 협조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지난달 30일 “당국의 강제력과 행정명령으로 국민의 모든 활동을 차단할 수는 없다”며 “국민께서 앞으로 확실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5단계 적용 기간은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6일까지 8일간이다.
 
김지아·채혜선·이우림·편광현·박현주 기자 kim.ji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