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의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33 프로젝트 디자이너·팝 아티스트 릭 킴
‘회사인’ 10년 하며 재능과 자신 찾기
1999년 스무살 태훈씨는 전북대 미술대학에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했어요. 1학년 새내기 시절 유학생들을 돕는 국제교류부 활동으로 다양한 나라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자연스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죠.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자 진로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죠. 그는 과감하게 전공인 시각디자인 분야 취업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 전공분야로 취업한 친구들을 보니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죠. 좋아서 했던 공부나 일이 막상 밥벌이가 되면서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태훈씨는 누구보다 그래픽 디자인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처럼 되기 싫었습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아씨이태원(Artsy Itaewon)'에서. 릭 킴은 2019년 1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6개월간 예술가의 작업실 겸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당장 도전에 나선 그는 대학 3학년이던 2005년 전주지역 민영방송인 JTV에서 FD(연출 보조)로 방송 일을 시작했습니다. 2년 동안 TV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면서 미디어의 현실적 한계를 느끼고, 방송 제작진은 때로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진실과 거짓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결국 이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서울 홍대 앞 편집숍 'object'에서 컵드로잉을 비롯한 릭의 다양한 작품을 2013년 1년간 상설 전시했다.
내 안의 아이디어 ‘사이드프로젝트’로 풀어
‘직장인’으로 사는 10년 동안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마음 한 편은 즐겁지 않았어요. 태훈씨의 머릿속에는 달리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차곡차곡 메모해 뒀어요. 어느 날 그것들을 어디엔가 풀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결정적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2012년 1월 1일 0시 15분. 가까운 친척의 임종을 홀로 지키며 새해 첫날을 영안실에서 맞게 된 거죠. 몇 시간만 병실을 지키면 될 거라 가볍게 생각하고 갔던 그로선 엄청난 쇼크였어요.

2018년 12월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에서 진행했던 '내가 사랑하는 얼굴' 전시회에서.
2013년 1월, 회사에 담당 업무 변경을 요청하고 6개월간 대기발령을 받았습니다. 운 좋게도 이 기간 일하지 않고도 월급을 받게 돼 시간적 여유가 생겼죠. 그래서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일부터 시작했어요. ‘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이하 프페드)’, 모르는 사람들의 페이스 드로잉(face drawing)을 그려주는 겁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며 마스크를 쓴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를 계기로 ‘프페드’의 후속 과정이 생겼죠. 신청자들에게 캔버스로 출력한 작품의 구입의사가 있으면 판매해 보기로 한 거예요. 판매 과정에서 그냥 그림만 전달하는 것은 왠지 재미없게 느껴졌죠. 청담동의 작은 전시공간을 빌려 팝업 전시회를 열고 그를 아는 뮤지션들이 동참해 파티가 됐습니다. 그림의 주인공들은 전시회에 와서 작가와의 만남 후에 그림을 가져가게 했죠. 그의 첫 사이드프로젝트 ‘프페드’의 전 과정은 이렇게 완성됐어요. 이때부터 태훈씨는 릭 킴(Rick Kim)이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로 활동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다 아는 유명인의 얼굴이 아니라 내 가족·친구·연인 등 평범한 얼굴들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사실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경우가 드물죠. 그래서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작품으로 만들어 자신의 얼굴이 전시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2016년 6월 '아트센터 나비'에서 'InterFACE' 전시를 진행하고 애프터 파티를 열었다.
2015년에는 회사를 설립해 여러 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기도 했지만, 2017년부터는 다시 1인기업가로 돌아와 프리랜서 그룹과 자유롭게 협업해요. 2018년 11~12월엔 와디즈로부터 ‘프페드 in Wadiz 프로젝트를 제안 받아 펀딩 목표치의 350% 이상 모금액을 달성하기도 했죠. 놀라운 사실은 작업 의뢰인의 90%가 태훈씨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이었죠. 12월 19~25일 합정동 페이머스 그라운드에서 ‘내가 사랑하는 얼굴’ 개인전도 개최했어요. 2019년에는 경기도 전역 50여 곳 이상 마을공동체 공간 조성 담당자를 대상으로 커뮤니티 디자인 컨설팅 강연 워크숍을 진행했죠. 이후 개인의 얼굴을 넘어 회사의 얼굴인 '브랜딩(B.I)' 작업까지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난임전문병원인 'HI여성의원'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인터널브랜딩 강의하는 모습.
그는 미래 직업세계의 변화상에 맞는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에게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경기도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요청으로 2017년 8월 위례신도시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해 컨설팅을 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길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