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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의료정책 수립 때 의료계 협의 의무화한 법 존중해야

중앙일보 2020.08.31 00:26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장한 울산대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대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교수

우리나라는 의료 접근성, 의료 수준에서 가성비가 탁월하다. 코로나 사태에 잘 대처해 찬사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의대생 동맹 휴학, 졸업생 국시 거부, 전공의·전임의 파업과 일괄 사표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 2차 유행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나.
 

협의 없이 강행하다 의료계와 갈등
정부는 이제라도 법적 절차 지켜야

건강보험제도와 관련된 이 문제는 오래된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국내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이 정해준 수가를 치료비로 받아야 한다. 제한된 의료 재정으로 수가가 낮게 책정되다 보니 의원들은 비급여 항목이 많은 성형·비만·피부 미용에 집중하고 병원은 고가 검사를 선호하며 대도시에 몰렸다. 정부가 내놓은 ‘지역의사제’는 국가 장학금으로 의사를 양성한 뒤 10년 동안 시골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한다. 의료계가 반대하자 의사들이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다.
 
의료 소외 지역과 분야를 해소하려면 정부가 공공 의료에 투자하고, 기피 분야의 수가를 올려주면 된다. 하지만 2013년 진주의료원 폐원 사태에서 보았듯 적자 보전을 위해 지속해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정부도 감당하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에 협조한 지방 의료원들이 적자로 급여를 체불하고 있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가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면서 낮은 수가로 인해 병원에서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정부로선 의사 지원자가 있고 면허만 주면 진료는 알아서 할 테니 지방 중소형 병원들에 필요한 전문의나 응급실 당직 의사를 공급하는 수준의 지역 의사제를 기획했다. 문제는 10년 의무 기간을 마친 지역 의사의 상당수는 도시로 가고, 해당 과에 대한 의대생 지원이 급감해 전문 인력 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으로는 합당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의료 재정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공공 의대 신설, 원격 진료, 한약 첩약 급여화도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한정된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사전에 철저히 따져야 한다.
 
절차 측면에서 의대생·전공의들은 의료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료계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는 이익단체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도는 한계가 있고 반드시 그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번 정책을 철회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해 달라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책 수립 절차에 법 위반이 있다면 어떤가. 2000년 의약 분업 정책으로 시작된 의사 파업이 종료된 뒤 그해 7월 보건의료기본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관계 중앙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고, 의료계와 의료 수요자 등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 심의를 거쳐 5년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 국무회의 심의 후 확정하도록 했다. 보건의료 자원·제공·이용 체계 같은 주요 항목은 보건의료발전계획에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법 제정 이후 20년 동안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계획을 한 번도 수립하지 않았다. 물론 과거 정부도 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의료계 파업이 일어날 정도라면 정책을 수립할 때 법률이 요구하는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의대생과 전공의는 합의문에 ‘철회’ 또는 ‘원점 재논의’라는 문구만 들어간다면 단체 행동을 풀고, 재논의 결과 기존 정책이 최선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현 정권 초기 숙의 민주주의를 도입해 신고리 원전 재개와 탈원전 권고를 도출했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이전 권위주의 정부와 차별화하려면 이제라도 법적 절차를 지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장한 울산대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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