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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바꾸는 통합당…보수의 영욕 함께한 33년 당명사

중앙일보 2020.08.29 10:00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종택 기자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장-중진의원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종택 기자

 
미래통합당이 당명 개정을 앞두고 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내부 확정 절차를 거치면 다음 주 초쯤에는 새 당명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 달 1~2일 당 전국상임위원회와 전국위에서 새 당명이 의결되면, 통합당은 출범 7개월 만에 당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
 
앞서 통합당은 당명 공모로 약 1만7000건의 아이디어를 접수했다. 가장 많이 접수된 키워드는 ‘국민’이었고, ‘자유, 한국, 미래’ 같은 키워드가 뒤를 이었다. ‘늘 푸른, 희망, 함께’ 같은 키워드도 접수됐다고 한다. 통합당 관계자는 “추천된 키워드가 기존 국민의당이나 자유한국당, 위성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과 상당 부분 겹친다”며 “참신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민자당이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새 당명 현판식을 갖는 장면. 중앙포토

민자당이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새 당명 현판식을 갖는 장면. 중앙포토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 정당의 당명은 5차례 바뀌었다. 웬만하면 당 이름에는 손을 대지 않는 이른바 정치 선진국과는 다른 양태인데, 당명 개정을 분위기 쇄신용 카드로 썼기 때문이다.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나, 노선 변화가 필요할 때 관련 논의가 불붙었다. 3당 합당으로 1990년 출범한 민주자유당이 약 5년 만에 신한국당으로 변신했을 때는 노선변화가 화두였다.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은 ‘중도 보수’ 노선을 표방하며 기존 5·6공화국 인사들 대신 ‘YS 키즈’라 불린 김무성·김문수·이재오·홍준표 등 신인들을 대거 등용해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신한국당이란 당명은 김영삼 정부의 슬로건이었던 ‘신한국 창조’에서 따왔다.
 
하지만 김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둘러싼 비리 사건이 터지고, IMF 외환 위기까지 겹치면서 신한국당은 코너에 몰렸다. 당 지지율이 급락하자 1997년 15대 대선 직전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와 조순 통합민주당 총재가 손잡고 한나라당을 탄생시켰다. 당명은 조순 총재가 지었는데 ‘하나’ ‘큰’이라는 뜻의 ‘한’과 ‘나라’를 합쳤다. 보수정당으로선 처음으로 순우리말 당명을 썼다.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당시 강재섭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제10차 전당대회에서 당시 강재섭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중앙포토

염창동 신당사 입주식을 하루앞둔 15일 이사짐센터 직원들이 천막당사의 집기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염창동 신당사 입주식을 하루앞둔 15일 이사짐센터 직원들이 천막당사의 집기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주화 이후 가장 장수한 보수 정당의 당명으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15년간 유지됐다. 나경원·남경필·오세훈·원희룡 등의 보수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입성한 것도 이때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역풍으로 당의 현판을 떼고 천막당사를 짓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2007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MB) 대통령이 당선돼 10년 만에 여당 타이틀을 가져왔다.
 
한나라당은 2012년 19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새로움을 의미하는 ‘새’에 세상을 뜻하는 ‘누리’가 합쳐진 두 번째 순우리말 당명이다. 당시 임기 말이었던 MB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보수 쇄신을 내세우면서 당명 개정을 추진했다. 이때 당의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다.
 
그해 19대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전성기를 누린 새누리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했고, 90여 석으로 줄어든 새누리당은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며 ‘자유’ ‘한국’ 등 전통적인 보수 이미지를 강조했다.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2012년 2월16일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관계자들이 새누리당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2012년 2월16일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관계자들이 새누리당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 중앙포토

 
자유한국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등에서 연달아 참패했다. 결국 2020년 4ㆍ15 총선을 앞두고 ‘통합’이 보수 진영의 화두로 떠오르자 새로운보수당(옛 바른정당) 등과 합당해 미래통합당을 창당했다. 당 상징색도 분홍색으로 바꿨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 체제로 치른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당명 개정을 눈앞에 두게 됐다.
 
새 지도부는 당명 개정으로 아직 당에 남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정 부분 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상징색과 로고도 추석 전에 발표할 계획이다. 당 관계자는 “새 출발의 의지를 국민 앞에 다지는 차원”이라며 “새 당명보다 중요한 것이, 당이 실제 현장에서 쇄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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