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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曰] 민주라는 이름의 ‘가면무도회’

중앙선데이 2020.08.29 00:28 701호 30면 지면보기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쿠데타가 있다.” (『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아날로그출판사, 63쪽) 서구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사 쿠데타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 물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무도회’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성행 중이다.
 

민주 위협하는 공약, 행정권 과용 쿠데타
반대편 적 만드는 ‘적화(敵化)’ 중단해야

저자인 데이비드 러시먼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는 “공약성 쿠데타, 행정권 과용 같은 쿠데타는 외견상 민주주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했다. 공약성 쿠데타는 ‘선거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장악하는 것’이다. 행정권 과용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번에 민주주의를 전복하지 않고 체제를 조금씩 약화시키는 것’이다. 러시먼은 “특히 행정권 과용은 21세기에 민주주의를 가장 강력하게 위협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민주화 운동과 반독재 투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지금의 한국 정부와 집권당이 거꾸로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은 절대로 믿고 싶지 않은 명제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거의 매일 그리고 매우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일그러진 행태를 보노라면, 우리가 정말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에 살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와 국회의 독단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압도적 과반인 176석을 얻은 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수의 힘을 등에 업고 여권은 무소불위의 행정권·입법권을 입맛대로 휘두른다. 공약성 쿠데타, 행정권 과용 쿠데타를 연상시킬 정도다.
 
법안 통과엔 마치 ‘일사천리’의 원칙이라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입법이건 공청회 등 사전 여론 수렴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충분한 대비 없는 수술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급한 입법은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를 일시에 대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부작용이 만만찮은 ‘임대차 3법’을 졸속으로 밀어붙인 건 시작에 불과하다. 경영권 위협, 소송 남발,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중복 수사 등의 논란이 일고 있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도 일사천리로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국회 속전속결 통과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해직자와 실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동 관련 법 개정안도 비슷한 결말이 예상된다.
 
다수결만 신봉한다면 독재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임차인만 국민이 아니고 임대인도 국민이다. 정책이란 그리고 정치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예술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와 국회는 늘 일방적이다. 지지층만 고려하고 다른 당사자들의 비판엔 눈과 귀, 입을 막는다.
 
남의 편에 대해선 가차 없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했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핫바지’로 만들고, 최재형 감사원장에게는 도를 넘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돼 버렸다.
 
게다가 툭 하면 ‘엄벌’ 경고다. 부동산중개인에게, 임대인에게, 다주택자에게, 전공의와 전임의들에게 정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겁박한다. 서슬 퍼렇던 독재시대의 데자뷔인가.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만 해도 그렇다. 일방적으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발표하기 전에 미리 충분히 여론을 경청했더라면 코로나19 패닉 시대에 이런 난리를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반대편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적화(敵化)놀이’는 이제 여기서 중단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무도회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한경환 총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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