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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직업·짐이던 골프, 유소연에게 이젠 삶의 선생님

중앙선데이 2020.08.29 00:21 701호 24면 지면보기

[스포츠 오디세이] 골프 ‘내셔널 타이틀 수집가’

JTBC골프매거진 표지모델 촬영에 나선 유소연은 필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발적인 눈빛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 ’역시 프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 JTBC골프매거진]

JTBC골프매거진 표지모델 촬영에 나선 유소연은 필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발적인 눈빛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 ’역시 프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사진 JTBC골프매거진]

프로 데뷔 13년차,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9년차인 유소연(30)은 코로나19로 인해 뜻하지 않은 휴식기를 맞았다. LPGA 대회가 열리지 않아 서울로 들어온 유소연은 몇 개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빼고는 모처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미·일·중·캐나다 오픈 석권
우승 상금 2억5000만원 기부도

레슨 콘텐트는 하나에만 집중을
어프로치 볼 떨어질 곳 상상 뒤 샷

골프전문 잡지 〈jtbc골프매거진〉 표지모델 촬영이 진행된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유소연을 만났다. 짙은 눈화장에 풀 메이크업을 한 그는 전문 모델처럼 순간순간 눈빛과 표정을 바꾸며 촬영을 리드했다.
 
유소연은 지난 6월 인천에서 열린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중국여자오픈(2009), US여자오픈(2011), 캐나다여자오픈(2014), 일본여자오픈(2018)에 이어 다섯 번째 차지한 내셔널 타이틀이었다. 한국여자오픈 우승 상금(2억5000만원) 전액은 코로나 방역 지원 기관에 기부했다. 어떻게 그렇게 장한 생각을 했을까.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많이 했는데, 기부하는 걸 알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좋은 일은 남몰래 하는 거라는 얘길 많이 들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좋은 일 하는 걸 알리면 그 일을 더 많은 사람이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여자오픈 개막 전까지만 해도 잘할 수 있을까 싶어 많이 떨렸는데 경기가 잘 되면서 좋은 성적이 나왔고, 그래서 기부를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죠.”
 
소렌스탐 “LPGA서 일관성은 유소연” 극찬
 
‘내셔널 타이틀 수집가’라 불러도 될까요.
“그것 참 좋은 별명이네요. 말이 씨가 된다고 하니 자꾸 불러주시면 또 다른 내셔널 대회에서 우승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내셔널 타이틀에 강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2018년 일본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일본 기자가 ‘내셔널 타이틀을 네 개나 갖게 됐다’고 하기에 ‘아, 내가 내셔널 타이틀에 강하구나’ 생각을 했죠. 내셔널 타이틀은 선수들도 진정한 테스트라고 말할 정도로 코스가 어렵고, 코스가 요구하는 샷들을 잘 해내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것 배우는 걸 좋아하니까 그 코스들을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샷들을 배우고 연구하는 게 재미있어요.”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LPGA 사전에서 ‘일관성’을 찾으면 유소연이 보인다”고 말했죠.
“소렌스탐처럼 대단한 선수가 저를 그렇게 칭찬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꾸준한 선수, 일관성 있는 선수라는 평이 좋긴 한데 저한테는 무게가 느껴지는 별명입니다. 꾸준한 건 중요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 제가 느끼고 다른 분들이 느끼는 실망감 같은 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거든요.”
 
유소연만의 골프 색깔은?
“저는 창의적인 선수인 것 같아요. 엄청난 장타도, 기막힌 퍼팅도 없지만 상황에 대처하는 게 남과 조금 달라요.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할 때 창의적인 샷으로 이겨내거든요. 힘든 상황을 만났거나 트러블 샷을 할 때 ‘야, 흥미롭네. 도전해 볼까’ 하는 게 제 골프의 특색입니다.”
 
1990년 6월생이니 얼마 전에 만30세가 됐는데요. 뭐가 달라졌나요.
“선배들이 서른 되면 체력이 달라진다고 하던데 정말입니다. 작년 슬럼프도 이와 연관이 있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는데 힘이 떨어지는 건 해이해져서가 아닌가 자책한 거죠. 몸이 힘든데도 더 많이 훈련했더니 효과도 없고 경기력도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겁니다. 이젠 조금 더 성숙해진 거 같아요. 나이가 먹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주어진 변화 속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유소연의 아이언 샷. [사진 KLPGA]

유소연의 아이언 샷. [사진 KLPGA]

유소연은 멘탈이 단단한 선수로 유명하다. 웬만한 위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스포츠심리 전문가와 여러 멘토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 가장 깊이 새기고 있는 건 ‘네가 행복한 사람이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유소연이니까 이런 걸 했다’ 남기고 싶어
 
그 가르침이 실전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물었다. 유소연은 “멘탈이 흔들린다는 건 뭔가 일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근데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고 슬프지만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게 많더라고요.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내 인생이 무너질 정도로 죽도록 힘든 일인가’ ‘이것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인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별일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고 설명했다.
 
유소연에게 골프는?
“아홉 살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골프는 취미였어요. 열네 살 골프 선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골프는 직업이었습니다. 프로 전향하고 나서는 짐이었죠. 처음으로 ‘골프를 남을 위해 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스무 살에 호주 코치를 만나 공을 똑바로만 치는 게 아니라 커브도 줄 수 있고 높게도 낮게도 칠 수 있다는 걸 배웠을 때 골프는 저의 재미가 된 거 같아요. 2011년 US오픈 우승하고 미국 진출한 뒤부터 골프는 인생의 선생님입니다.”
 
선수로서 목표, 은퇴 후의 목표는?
“이름이 남는 선수가 되는 겁니다. 내셔널 타이틀 수집가도 좋지만 ‘유소연이니까 골프계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구나’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은퇴 후엔 골프 산업 쪽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한국이 골프 선진국이지만 골프 산업에서는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다고 보거든요.”
 
주말 골퍼가 골프를 즐기려면?
“골프를 하는 이유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취미활동이지만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면 레슨도 받고 연습을 하셔야 해요. 정보 과부하 시대라 레슨 프로그램과 유튜브 동영상도 너무 많아요. 프로 한 명의 레슨에 집중하는 게 좋겠죠. 주말밖에 골프채를 들 시간이 없다면 자연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껏 즐기세요.”
 
이번 주말 딱 한 타만 줄이고 싶다면?
“어프로치죠. 샷을 어디에 떨어뜨려서 어떻게 굴러가게 할 건지 그림을 그리세요. 떨어질 지점만 오랫동안 째려보고 상상한 뒤에 치세요. 그럼 오케이 거리에 붙일 수 있을 겁니다. 하핫.”
 
‘우승’ 가정하고 영어 인터뷰 연습…그 직후 US오픈 일낸 완벽주의자
유소연

유소연

아홉 살에 골프를 시작했고, 한때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다.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대원외고를 나왔다. ‘금수저’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을까. 유소연은 아니라고 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신데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집에서 자랐고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골프를 그만둘 뻔한 적도 있었어요. 집이 풍족해서 바이얼린을 한 것보다는 교회나 문화센터 같은 데서 음악을 접하고 배울 기회가 많았을 뿐이죠. 금수저랑은 가깝지 못한 삶을 살았어요.”
 
유소연은 초청 선수로 출전한 2011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사진)한 뒤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를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진출을 꿈꾸던 그는 영어선생을 소개받은 뒤 어떤 대회에 우승했다는 전제 하에 인터뷰를 하는 연습도 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US오픈 우승을 했고 ‘준비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미국서 살아보지도 않은 애가 영어 꽤 잘하네” 소리를 들은 유소연은 그게 부담이 돼 더 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유소연은 2009년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LPGA에서 뛰고 있던 2013년 2월에 졸업했다. 그는 재학 시절 ‘남다른 특기생’이었다. 강의에 빠짐없이 들어왔고 과제를 성실하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학생회 활동, 과 MT 등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지금도 연세대 체육교육과 교수들과 선후배 사이에서 유소연은 전설로 통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jtbc골프매거진〉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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