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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국가는 근대 이전에도 있었다

중앙선데이 2020.08.29 00:20 701호 20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의 이번 주 이 책

민족

민족

민족
아자 가트,

19세기 아프리카 줄루 왕국
문맹 상황에서도 국가 형성

‘친족과 문화’가 영속 비결
폭발적 잠재력은 경계해야

알렉산더 야콥슨 지음
유나영 옮김
교유서가
 
민족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탈민족주의 주장은 여전히 한국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어 보인다. 민족주의와 한두 끝 차이인 극우 애국주의, 인종차별 등이 기세등등해서다.
 
이런 현실이 무색하게 국내 학계에는 그동안 민족주의 담론을 천덕꾸러기로 치부하는 흐름이 존재했다. 과거 민족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했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다. 민족은 사회역사적 구성물일 뿐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서구 학계의 논의가 힘을 보탰다. 인쇄술, 광범위한 자본주의 경제, 대규모 집회와 해산이 용이한 도시화, 대중 교육, 산업화 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동원의 결과 발명된 게 민족감정, 민족이라는 논리다.
 
『문명과 전쟁』의 저자 아자 가트의 후속작인 이 책은 그런 ‘근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논박한다. 스스로를 ‘전통주의자’로 분류하며 민족이 하나의 실재이자 정서로서 역사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두루 존재해왔다는 주장을 편다. 그렇다고 민족이 원초적(primodial)이거나 영속적(perennial)인 불변의 존재라는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특정 시점에 형성됐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다고 본다. 목축과 농경으로 살아가던 선사 시대 명멸을 거듭했던 ‘정치적 종족’이 이를테면 민족의 한 형태다. 하지만 이 종족이 인족(people, 고뇌가 담긴 번역어다!)을 거쳐 정치적 주권을 행사하는 민족(nation)으로 변모해 지금과 같은 민족국가를 형성하기까지 ‘친족과 문화’라는 민족의 핵심적인 요소가 생명력을 잃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근대에 탄생한 역사적 구성물인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아자 가트 교수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민족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19세기 북미에서 제작된 ‘인류의 주된 유형들’. [사진 The Bridgeman Art Library]

민족과 민족주의는 근대에 탄생한 역사적 구성물인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아자 가트 교수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민족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19세기 북미에서 제작된 ‘인류의 주된 유형들’. [사진 The Bridgeman Art Library]

600쪽이 넘는 책은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민족국가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로 저자가 주목한 게 19세기 초 남아프리카의 줄루 왕국이다. 18세기 말까지 응구니족은 여러 족장사회로 분열돼 있었다. 친족에 기반한 탓에 족장사회들간에 정복전쟁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딩그스와요라는 족장이 이웃 족장들을 교체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30개 부족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 왕국의 모습을 갖춘 데 이어 후계자인 샤카가 잔인한 정복 작업을 벌인 끝에 영국만 한 넓이에 인구 20~30만 명에 이르는 왕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샤카는 왕국 통합을 위해 공동의례 제도를 활용했다. 줄루 왕국은 1872년 영국에 의해 종말을 맞지만 유사 이래 국가와 민족이 형성되는 과정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문자를 읽고 해독하는 문해(文解) 능력이 민족 정체성 형성의 필수조건이라는, 전통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통용되는 시각이 틀렸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러시아의 민족의식도 일부 역사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18세기 표트르 대제가 근대 서구적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싹트기 시작한 게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로마노프 왕조가 출범할 때부터 전근대적일망정 러시아 의식, 정체성, 연대 개념이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결과 왕조를 탄생시킨 대중반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16세기부터 다른 이방 민족들의 도덕적 타락과 거리가 먼 순수하고 거룩한 인족으로 스스로를 여겼다는 얘기다.
 
저자는 1930~1940년대 인류의 참상을 목격한 서구 지성들의 근대주의적 기획이 민족주의를 표피적 광기이며 인간 심리에 깊게 뿌리내리지 않은 일시적 유행으로 착각했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종족민족 현상의 역사적 궤적을 잘못 해석했고, 그 폭발적 잠재력이 드러날 때마다 당혹해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의 하나가 키프로스 문제다. 이 섬나라는 민족·종교에 기반한 적대감이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1974년 전쟁, 집단 이주를 통해 영토가 완전히 분리된 채 갈라져 있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그런 현실에 눈감은 채 분리된 두 종족 공동체가 연방 형태로라도 하나의 국가로 재통일되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족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걸로 본다. “현재 유럽연합 내의 긴장들이 보여주듯이, 영토적 국민국가는 오늘날까지도 유일한 실질적 의사결정 주체로 남아 있다”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발언을 인용했다. 민족주의의 폭력적 분출에 대처하려면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신준봉 전문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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