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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 화살' 쐈지만 코로나·지병에 꺾였다…아베 영욕의 8년

중앙일보 2020.08.28 17:39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장수 기록'을 넘긴 지 닷새 만인 28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50년 지병'의 악화가 직접적인 이유지만 취임 초반과 달리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는 등 집권 동력이 크게 떨어진 것도 사임을 결심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전 마스크를 쓰고 일본 총리관저에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오전 마스크를 쓰고 일본 총리관저에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아베노믹스,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
우왕좌왕 코로나 대책, 민심 이반 결정타
우경화 정책에 주변국과 관계도 악화일로

아베 총리는 이달 24일로 연속 재임기간이 2799일을 기록하며 외종조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기록(2798일)을 넘어섰다. 첫번째 집권기(366일)까지 합치면 28일까지 총 3169일을 총리직에 있었다.    
 
2006년 9월 26일 전후 최연소 총리 타이틀을 달고 52세 나이로 취임한 아베 총리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07년 9월 12일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으로 한 차례 사퇴한 바 있다. 당시 아베 내각은 ‘아름다운 나라’를 슬로건을 내걸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각료들의 설화 등 잇단 스캔들에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가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는 이때부터 나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후 절치부심한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새 경제 정책을 원동력으로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뒤 장기 집권 체제에 돌입했다. ‘기동적 재정 정책’ ‘과감한 양적 완화’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 등 이른바 ‘세 개의 화살’로 장기 침체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었다. 
 
돈을 찍어 시중에 돈을 풀자 엔화 가치가 하락했고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은 올라갔다. 기업들이 활기를 찾자 실업률을 낮아졌고 취업률은 높아졌다. 일본 증권거래소의 닛케이225 지수는 2012년 8000 수준에서 2019년 2만3000대까지 올랐다. '잃어버린 20년'이란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함정에 빠졌던 일본 경제에도 아연 활기가 돌았다.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2007년 9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임을 발표한 직후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중앙포토]

하지만 돈 풀기가 주축인 아베노믹스는 시간이 갈수록 약발이 떨어졌다. 엔화 약세 기조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으면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6%로 5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악재까지 겹쳐 지난 2분기엔 -7.8% 참담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가 1년 이어질 경우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은 -27.8%까지 추락할 것이란 추산도 나왔다. GDP 통계를 역산할 수 있는 1955년 이후 '최악의 침체'를 맞을 것이란 의미였다. 
 
우왕좌왕하는 코로나19 대책도 아베 내각의 지지율을 끌어내린 요인이었다. 올해 4월 뒤늦게 긴급사태를 선언한 데 이어 긴급사태 해제 후인 지난 7월 22일 내수 진작을 위한다며 여행 장려 정책인 'Go To 트래블' 캠페인을 펼쳐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 결과 최근 한 달 확진자는 3만5000여명으로 앞선 4개월간 확진자 수를 웃돌았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에 '회심의 카드'였던 도쿄 올림픽 개최도 연기됐다.  
 
여기에 지난해 후반기부터 터진 스캔들도 직격탄이 됐다. 지난해 10월 경제산업상과 법무상이 잇따라 선거법 위반 파문으로 낙마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아베 총리가 국가 예산으로 진행되는 ‘벚꽃을 보는 모임’ 행사에 후원회 관계자들을 초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12월에는 정권의 역점 사업인 카지노형 복합 리조트 입법과 관련해 여당 의원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2013년 12월 A급 전범자들이 합사돼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서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중앙포토]

2013년 12월 A급 전범자들이 합사돼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서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중앙포토]

 
특히 한일관계는 악화일로였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에 반발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빼는 무역 보복에 들어갔다. 이에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 들면서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다. 
 
2012년 일본의 동중국해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선언 등에 중국과 관계도 악화했다. 최근엔 적국 내 미사일 발사 시설을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방위 정책을 바꾸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논의를 꺼내는 등 전후 평화헌법 체제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아베 내각 지지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아베 내각 지지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결국 시작은 화려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 22∼23일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재집권 후 두 번째로 낮은 36.0%로 집계됐다. 8월 들어 실시된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적합한 인물'을 물었더니 아베 총리는 4위에 그쳤다. 일본 사회 내 이런 장기 집권의 피로감이 아베 총리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졌고, 결국 사임 결심까지 나오게 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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